딸도 안다. 아빠가 생각보다 무디고 흔한 남자라는 거. 영원히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았던, 언젠가는 결혼하리라 다짐했던 아빠가 그리 특별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말이다. 아빠는 가끔 내 눈치를 본다. 미루어보건대 눈에 띄게 퉁명스러워진 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나는 18살까지도 아침마다 아빠에게 뽀뽀하고 등교하는 딸이었다. 나도 불과 5년 전 내가 그랬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우리 집의 전통이었다. 분명 이 전통은 엄마가 만들었을 테지만 덕은 아빠가 더 많이 보았다. 고생도 더 많이 했고.
여하튼 우리 집은 출근이나 등교 전이면 가족끼리 뽀뽀하는 살가운 전통이 있었다. 그러니 엄마가 없어 두 배로 고생하는 아빠의 아침을 뽀뽀로 깨워줄 마음쯤은 있었다. 애교는 없는 첫째 딸이지만 책임감은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알몸으로 집안을 누비기도 하고 그랬다. 스스로 다 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건지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서인지, 어설픈 에덴동산에 사는 허술한 가족이었다.
꽤 행복해 보이는데, 어쩌다 아빠가 딸 눈치를 보게 된 걸까. 실은 딸 눈치 보는 아빠들이 생각보다 많단다. 세상은 변한다는데 어째서 우리네 아빠들은 변하지 않는 것 같은지. 스무 살 언저리를 넘어가면 자식이 부모와 맞먹는 것 같다. 어른에 대한 환상도 깨져, 가족에 대한 굳건한 믿음도 깨져, 부모의 신성이 무너지는 때다. 나는 상대적으로 늦은 사춘기를 지나며 아빠가 완벽한 인간이 아닐뿐더러, 내게만 요구해서는 안 되었던 것들을 묵인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불어나는 내면의 불길을 걷잡을 수 없었다. 애교 없는 딸이 전투적으로 변하기까지 많은 생각의 굴곡들을 거친 것이다.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도어락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그 도어락 소리가 전혀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 때가 있다. 보통의 때다. “왔어?” 고개만 돌려 아빠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긴장을 내려놓는 편안한 숨을 쉴 때면 나도 잠시 편안해진다. 그리고는 아빠에게 무얼 하다 왔는지, 밥은 먹었는지 등을 간단하게 묻는다. 사실 진짜 궁금하지는 않지만 이런 사소한 일들을 궁금해해야 가족으로서 최소한이라도 기능할 수 있다. 서로의 안위를 파악하고 있어야 편안하니까. 나는 대개 아빠와 무표정으로 대화한다. 목소리에도 크게 톤이 없다. 그러다 친구나 남자친구와 통화할 때면 크게 웃기도 한다. 그러면 아빠한테 좀 미안하다. 이미 굳은 얼굴이 잘 펴지지 않는다.
한편 아빠는 대개 친절한 말투를 사용한다. 전화를 받아도 “어~” 하는, 우리 사이에 ‘여보세요’ 같은 형식은 필요 없다는 식의 응답. 그런 다정한 톤이 좋긴 하다. 그런데 아빠가 보통의 때와 같지 않을 때는? 내가 안중에도 없는 말투다. 그러면 내가 보통 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말을 걸게 된다. 약았다. 가끔은 아빠의 두 모습 사이에 괴리가 커서 어떤 게 진짜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대체로 친절한 그 사람인지, 때때로 예민하고 어려운 그 사람인지.
아빠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전투태세에 돌입한 지 오래지만, 실제로 달라진 건 없다. 말투만 조금 퉁명스러워졌을 뿐, 표정만 굳었을 뿐 대부분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내가 밥을 한다거나, 아빠가 밥을 안 한다거나 하는 것들. 어떻게 엄마 없이 10년을 살면서 김치볶음밥도 못 하는지 책임을 묻고 싶지만, 쪼잔하게 김치볶음밥 가지고 이 문제를 꼬집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말하는 건 김치볶음밥이 상징하는 바다. 이 집안의 여자일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한 불합리함.
아빠는 줄곧 말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여자가 밥 하는 세상이야”… 아빠가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면 우리 집은 그런 세상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세상에서 빼달라고 말하고 싶다. 아빠 혼자 그런 세상에서 두 손 놓고 살라고. 그 말을 하는 걸 생각할 때마다 표정이 굳는다. 우리 집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그런 얼굴이었다.
세상 모든 딸이 아빠에게 어떤 감정을 품는지는 모른다. 엄마 있는 집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엄마에게 조금 더 이입해서 아빠를 흘겨보는 딸들도 있을 거고, 남동생은 그렇지 않은데 나만 통금이 있냐고 따지는 딸들도 있을 거다. 서로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면서 점점 멀어지기도 할 테다. 사랑이란 게 예상과 달리 흘러가기도 하니까.
아빠와 딸이 이제는 등을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와 아빠는 지금 다른 곳을 보고 있을 것이다. 아빠는 애매하게 나를 보고 있을 테고, 나는 애매하게 아빠를 등지고 있을 테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그리워하지만 두려운 관계도 있는 법이니까. 굳지 않은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고 싶다. 부드럽고 유연하고 강인한, 그런 딸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