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의 표현법

by 최열음

우리 가족은 토종 충청도인이다. 무심한 듯 돌려돌려 할 말을 다 해버리는 것이 충청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와 아빠 같은 소심한 충청도인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묻어 두는 사람이라… 나는 폭포수 같은 사랑과 그러한 표현을 바랐지만 아빠는 조용히 신용카드의 사용권을 넘겨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알아서 그의 마음을 넘겨짚고 혀를 축이며 그것도 일종의 사랑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금쪽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해 돌아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금쪽이를 시청하며 아빠 탓을 많이 했다.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알아서 단물을 뽑아 먹는 게 지쳤던 나머지 원망의 화살을 겨누기 시작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마인드로 그를 이해하려고 했으나, 여러 금쪽이들을 보고 나니 역시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는 거였다. 아빠면 아빠답게 표현도 할 줄 알고, 충청도라는 지리적 배경을 부인하고 먼저 아빠여야 했던 거였다. 그는 싫은 소리도 하지 않지만 좋은 소리도 안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이따금씩 그가 칭찬 비슷한 걸 할 때면 나는 좋으면서도 표정을 감추는 딸이 되었다.


한 번은 아빠가 골프를 치고 기분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그래도 이 정도면 아빠가 너네를 잘 키웠다’는 식의 말을 꺼냈는데, 나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보통의 나라면 응당 ‘맞아, 고생했지’ 등의 말을 할 법한데 아빠도 반응 없는 내게 낯섦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빠를 당황시키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좋든 싫든 그를 쏙 빼닮은 나로서는, 가족 앞에서 좋다고 방방 뛰지도 않고 싫다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 물론 종종 진지한 대화를 하다가 울기는 했지만, 그건 억울함의 눈물이었지 감정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아빠를 낯설게 하고 나면 작은 돌파구를 찾는 것 같았다.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밥도 아주 조금 모자라고, 국도 아주 조금 모자란 때가 있다. 그러면 공평하게 모두 한 숟가락씩 덜 먹으면 될 텐데, 나는 내 밥그릇에서 세 숟갈을 덜어냈다. 그러고 나면 아빠와 동생은 배불렀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음식의 양을 잘 가늠하지 못했던 내겐 종종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배려쯤으로 덮어두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한 번은 같은 상황에서 울어버린 적이 있다. 중학교 때였는데 모든 게 억울하고 화가 난 나머지 식탁에서 그냥 울어버렸다. 나로서는 우리 가족의 문제를 알리는 표현이었는데, 밥 먹다가 우는 나를 아빠는 거의 모른척했다. 결국 나는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탁으로 돌아와 마저 밥을 먹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 어떻게 보면 신중해서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아빠에게 나는 대놓고 묻고 싶어졌다. 아주 당돌하고 솔직하게. 그에겐 용기가 부족했을 거고, 그래서 겁이 났을 것이다. 나는 알아서 짐작하는 세심한 딸이지만 동시에 아빠에게 폭탄을 날릴 수 없는 소심한 딸이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24년 치 용기를 내서 밥상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한 후로는, 아빠도 반찬을 한 가지씩 꼽아가며 괜찮다고, 맛있다며 혼잣말 같은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게 아내 없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화이자 표현이라는 것을 알기에 혼자 감격스러워한다. 물론 속으로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나 역시 아빠에게 오늘의 저녁 메뉴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말해준 적이 없다. 실상은 하루 전날쯤부터 내일 저녁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레시피까지 체크하지만, 어떤 메뉴를 어떻게 준비할 건지에 대해 물어봐도 잘 안 알려줬다. 괜히 나한테 저녁 메뉴를 묻는 게 아니꼬왔기 때문이다. 저녁 메뉴의 결정권이 내게만 있는 것처럼, 나는 그 결정권을 포기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은근히 회피하기만 했다. 그 오롯한 길이 10년째라는 게 스스로도 참 지독한 일이다. 잠자코 웃으며 준비한 메뉴를 공개할 수도 있었는데 내 쥐똥만 한 속이 그걸 거부했다.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물론 있지만 더 쾌적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두 충청도인이 가족으로 만나 한 사람은 반 평생을, 한 사람은 평생을 함께 살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주변부에서부터 끌어 모아 중심을 살짝 찌르고 도망치는 화법. 옆에서 듣고 있을 전라도인(남자친구)은 속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 아빠의 은은하고 향만 나는 사랑을 조각조각 모아 빈틈을 메워가며, 오빠에겐 나름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중이다. 아빠도 아마 텁텁하고 뻣뻣한 내 사랑을 알아서 캐치할 것이라 짐작하는 바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다들 이렇게 어려운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면서 사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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