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부딪히기.
그렇게 현이와 나, 둘이서 약 1년간을 11평 남짓한 가게의 모든 일을 했다. 로옹을 잘되게 만들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일단, 신선한 재료를 쓰려고 애를 썼다. 특히 초반 6개월은 손님이 많지 않았어서 매일 장을 보았다. 장본 재료를 다 소진하면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장사가 조금씩 되면서부터는 매주 새벽 5시에 도매시장에 가서 직접 장을 보았고 6년간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작은 모닝차에 트렁크며 뒷좌석이며 백미러가 보일락 말락 할 정도까지 장을 봤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재료를 쓰고 싶지 않았다.
음식 퀄리티에 집착했다. 당연히 밖의 배너에 있는 사진과 똑같은 음식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내 마음의 기준을 넘어야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고 새로 만들 때도 있었다. 현이는 "이걸 왜 버려? 하~"하며 서로 많이 다퉜다. 내가 음식에 주는 점수로 95점 이상은 돼야 손님께 낸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고 현이는 이런 나의 기준에 동의를 못해줄 때가 많았다. 반대로 기존에 만든 것과 새로 만든 것에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현이의 말에 나는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거랑 저거랑 똑같다고 볼 수가 있어?" 초반에는 서로의 기준 차이로 많이 다투었다.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너 혼자 다해~난 너랑 일 안 해"하고 가게 밖으로 나간 적도 여러 번이다. 지금은 안다. 단순히 고집을 넘어서서 우리 둘 다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각자의 의견을 고수했었다는 것을.
멀티는 기본이다. 손님맞이, 주문받기, 음식 만들기, 음료 만들기, 와인 서빙하기, 설거지하기, 손님의 질문이나 요청에 응대하기, 테이블 치우기, 장보기 등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가게 내부의 어떤 문제, 어떤 사안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 우리가 다 했으니까. 한 사례로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의 지인이 음식점을 창업했는데 음식에 대해 일도 모르던 사장은 주방장을 고용했다고 한다. 어느 날 주방장이 임금 인상 문제로 갑자기 그만둬버리니 영업을 아예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장은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적어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그 일을 하게 할 수는 있지만 사장도 할 줄 알아야 퀄리티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판단할 수 있고, 새로운 메뉴도 창출할 수 있으며, 펑크가 나는 상황이 왔을 때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일 여 년 동안 모든 일을 우리 둘이서 다했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우리 둘은 손이 어느새 척척 맞았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뭘 해야 되는지, 네가 뭘 해야 되는지 다 안다. 하루는 음식점을 하는 한 사장님(현이 친구의 지인)이 가게에 식사를 하러 오셨다. 시작부터 만석이 되었는데(물론 아주 작은 가게였지만) 우리 둘이서 주문받고,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서빙하고, 설거지하고 둘이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것을 보고 한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와, 이걸 어떻게 둘이서 다해!?" 싸우고 서로 말한마디 하지 않아도 손이 척척 맞아 음식이 잘 나가는 정도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사는 크게, 활짝 웃기.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가게에서 느껴지는 활기찬 분위기와 친절한 첫인상이 다시 오고 싶은지, 즉 재방문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손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도 해야 한다. 눈을 마주치며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 행위에서 '내가 즐겁게 일을 하고 있구나. 나는 이 일이 정말 좋아.' 하는 긍정적인 인식을 스스로에게도 주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어도, 다른 방에서 테이블을 치우고 있어도, 손님이 들어오는 입구를 등지고 있어도 손님을 본 누군가가 인사를 하면 다 같이 인사를 했다. 로옹에 오시는 분들에게 맛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좋은 기운까지 드리고 싶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비스와 심부름은 한 끗 차이라는 말이 있다. 손님을 살펴보다 필요하겠다 싶은 것을 먼저 챙기는 것은 서비스이지만 손님이 '이것 좀 주세요'해서 갖다 드리는 것은 심부름이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고용할 때 꼭 이 이야기를 해준다. 이왕에 와서 일하는 거 심부름을 하는 것보다는 서비스를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서비스는 무슨 일을 하든 한 스푼 정도는 얹어져 있는 일이니 여기서 연습해 보라고 말이다. 예컨대 영유아가 왔을 때 드리는 작은 유아용 수저를 아이가 들고 흔들다가 땅에 떨어뜨린다. 소리를 듣자마자 손님이 말하기도 전에 새것으로 드린다. 음식을 먹다가 사래가 걸린 손님이 기침을 계속하면 머그잔에 따뜻한 물을 담아 "따뜻한 물 한잔 드셔보세요. 좀 나아지실 거예요"하고 말을 건넨다. 손님들이 필요로 하거나 불편한 게 없는지 항상 살피는 자세가 중요하고 나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모든 불편을 다 해결해 줄 수 없지만.)
위의 나열한 모든 것들을 운영 7년 차인 지금도 하고 있다. (좀 더 신선한 재료를 얻기 위해 매일 재료를 공급받고 있는 점은 다르지만 '신선한 재료'라는 포커스는 여전히 동일하다. 요즘은 현지에서 재료를 바로 받아 쓸 수 있는 시대다!) 우리는 우리만의 치열한 세월을 보냈다. 그때뿐이겠는가. 지금도 치열하다. 여기저기 새로운 가게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우리의 개성을 담은 음식을 담아내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