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정확히 얘기하면 부산의 가덕도와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부산에서 통영 가는 길은 멀기도 했고, 길이 주는 재미라곤 조금도 없는 그냥 그런 국도였습니다.
그 길이 멀게 느껴진 건 실제의 물리적 거리를 가늠한 결과에서가 아니라 다분히 심리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차량들의 통행량이 많아 길을 가는 도중에 신호등이 많았고, 거기다가 조금 속도를 올리면 어김없이 튀어나오곤 하는 굽어진 길로 인해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반복됩니다. 그 때문에 비슷한 거리의 다른 국도를 타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듯한 지루한 느낌에서 연유합니다.
그리고 통영으로 가는 내내 수많은 식당들과 지나치는 차들, 그리고 그 보다 느리게 걷는 보행자들과 건널목들 말고는 별로 볼 것이 없는 국도 치고는 너무도 밋밋하고 재미없는 길이었습니다.
부산에서 통영을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다가 마산으로 빠져나와 국도를 타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진동을 거치고 고성을 지나서 통영에 도착하는데 매번 그렇지만 마산을 빠져나오거나 진입할 때마다 겪게 되는 극심한 체증을 경험하고 나면 여행으로 인한 설렘과 흥분은 지루함과 짜증으로 금방 변해버립니다.
하지만 거가대교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통영 가는 길은 그 이전과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물론 부산의 가장 서쪽을 벗어나는 순간부터이기는 하지만, 그 길은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합니다.
푸른 바다를 내내 보고 가는 건 기본이고, 자동차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멋진 사장교를 지나면서 자동차는 잠수함이 되어 침매터널로 진입하여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서서히 수면 위로 나옵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양한 연륙교로 연결된 아기자기한 예쁜 섬들을 지나서 거제도를 관통하는 시원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통영에 이르게 됩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옛날에 육로로 통영을 가는 그 지겨운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거가대교의 통행료 10,000원의 적정성을 놓고 논쟁을 벌이던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던 가를 여실히 느낄 법합니다. 오히려 둘러감으로 인해 추가로 소요되는 기름값, 시간, 그리고 운전자의 육체적 피로도 등을 고려하면 통행료가 비싸다고 종종 비난받는 이 다리가 생긴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옛날에는,
거가대교가 생기기도 전, 그리고 통영시가 아닌 충무시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먹거리 볼거리 등을 통틀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주자를 꼽으라면 누구나 충무김밥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충무시가 통영시로 개명하면서부터 충무김밥의 명성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 최근에는 동피랑이라는 벽화마을로 통영이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10년 전 즈음에 어느 시민단체가 주동이 되어 달동네를 아름답게 가꾸어보자는 운동이 전개되어, 전국 각지의 미술학도들의 도움으로 골목마다 다양한 벽화가 그려짐으로써 철거가 예정되어 있던 허름한 달동네는 벽화마을로 재생했고,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이 입소문을 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거기에 거가대교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서울에서 오려면 약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긴 이동시간과 거리를 무릅쓰고 여기 동피랑 벽화마을만을 보러 오기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만약 제일 서쪽에서 출발한다면 한 시간으로도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동피랑 벽화마을만을 목적으로 올 수도 있는 거리고,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동피랑에 왔습니다.
동피랑이라는 지명은 동쪽 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구불구불한 옛날 골목을 온전하게 간직하여 현재는 5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답니다. 부산에도 이와 비슷한 감천문화마을이 있는데 어둡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골목길들을 정비하고 벽화를 그려 넣어 부산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골목이 참 많았습니다.
차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제외하곤 동네의 거의 모든 길은 골목길이었습니다.
조금 넓은 골목길들과 좁은 골목길들이 내 유년시절과 함께 했습니다.
동피랑 벽화마을이 조성되기 훨씬 전에, 지금쯤은 내 특별하지 않았던 유년의 기억들처럼 사라져 버렸을 옛날에 내가 살았던 동네의 윗동네에 마지막으로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놀던 그 골목길들을 그 당시에 좁다고 인식을 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그때의 그 골목들은 너무도 좁고, 구불구불했었고, 또 그런 길을 만들고 있는 담들은 그만큼 더 낮아 보였습니다.
이제는 그것들 마저도 하나둘씩 사라져 버립니다.
나의 과거들이 조금씩 지워져 가는 느낌입니다.
통영시가 아닌 충무시였을 때 여길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국작가촌이란 곳인데 옛날에 작가들이 머물면서 창작 작업을 하던 곳을 6개의 펜션동으로 꾸며서 현재는 일반인들에게 고급 펜션형 숙소로 사용되는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일종의 규모가 작은 리조트 같은 곳입니다.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육지인 충무시와 단절되고, 수국작가촌 내에서는 완전한 독립성이 보장된 개별적인 동끼리 단절되어 타인들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으면서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섬이기 때문에 4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 위에서 연출되는 멋진 일몰이나 일출 중 어느 하나는 반드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낚시도 할 수 있지만 나는 거기서 갯바위에 붙어 있는 석화를 직접 따서 먹어본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로부터 아마도 15년은 훨씬 더 지난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왕성하게 일을 하던 때, 수시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그 핑계로 함께 술도 자주 마시고, 또 그 뒤풀이 겸해서 여기에 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조금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중앙시장에 들러 문어랑 횟거리를 푸짐하게 사들고 와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던 곳입니다. 아직도 그렇게 운영되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박의 숙박료가 엄청납니다. 이제는 보통사람들이 맘 편하게 갈 곳은 아닌듯합니다.
통영시로 명칭이 바뀌고 난 뒤에 여길 또 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영화 '하하하'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가볍고 유쾌한 영화로 그 주무대가 중앙시장 옆에 있는 나폴리 모텔입니다. 언제 적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의 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멋대가리 없는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마치 '하하하'를 만든 홍상수 감독 같은 느낌을 줍니다. 후에 알게 됐지만 그 영화는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같이 많은 상징과 은유가 깔린 만만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홀로 우뚝 서서 한편으로는 어색해하는 듯, 다른 한편으론 당당해하는 듯한 나폴리 모텔 같은 영화였습니다. 오히려 '... 모를수록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는 감독이 자주 쓰는 의도적 대사처럼 나폴리 모텔과 영화 '하하하'는 그렇게 서로 어울려서 여기 통영에 와서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무심한 척 뻔뻔스럽고 뒤끝이 강한, 그렇기 때문에 묘한 여운을 남겨 한동안 사람을 찜찜한 기분 속으로 몰아넣는 걸 좋아하는 듯한 능글능글함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다음이 또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입니다. 그 사람의 영화만 좋아합니다.
내가 통영을 좋아하고 또 와보고 싶어 한 진정한 이유는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오천 통이 넘는 편지를 쓴 그 사람이 살았던 동네라는 데 있습니다. 거의 20년간 이어진 편지 주고받기가 여기 이 도시의 어느 우체국 우체통을 매개로 이루어진 그 동네입니다. 그리움을 넘치도록 담은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순간과 애타게 기다리던 편지를 집배원으로부터 받았을 때의 기쁨은 어느 쪽이 더 컸을까. 어쨌든 두 사람은 20년간을 편지를 매개로 사랑을 했었고 그래서 행복하였을 겁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 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그들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를 걷다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초자연적 존재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 기적은 누구에 의해 행해지는가.
누가 사랑이라는 기적을 일으키는가
......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나 다정한 미소나 잘생긴 얼굴이나 근육질 몸매나 세련된 매너 같은 것에 의해
사랑이 발생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
이 생각을 옳다고 인정하려면, 알코올과 음악과 은은한 조명도 받아들여야 한다.
커피 향과 등산과 안개와 비와 바다와 하늘과 청바지와 블라우스와 시집과 영화와 예배당과
고궁과 벚꽃과 단풍과 심지어 신용카드까지 추가하여야 한다.
추가할 목록은 수없이 늘어날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은 늘 어떤 상황 속에서 일어나니까.
어느 정도는 그것들이 사랑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랑을 일으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건 미신이 아닐까.
그것들에 의해 사랑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그것들에 빛을 비추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지 않을까.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 '사랑하기'라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랑이다.
이 기적의 주체는 사랑이다.
연인들은 사랑이 기적을 행하는 장소이다.
사랑이 사랑하게 한다. 이는 마치 존재가 존재하게 하는 것과 같다.
......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애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
......
- 사랑의 생애, 이승우
그러고 보면 통영은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술의 도시라 불릴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 김춘수와 유치환,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그리고 음악가 윤이상 등이 통영 출신입니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하지만 이들보다는 덜 알려진 예술가들을 배출한 도시입니다.
하루 만에 통영을 다 둘러보고 느끼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가까운 다음에 꼭 한번 더라는 다짐을 할 수 있기에 짧은 시간이 더 의미 있었던 통영 방문이었습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 말에 참 많이 공감하게 되는 나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