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주한 후엔 녹음본을 듣자

2025.06.15

by 스며드는 순간

방학이지만 학교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여름 학기를 듣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밴드부일것이다. 밴드부 연습을 하러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은 한시간 반. 일단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어째서 나를 좋아했을까 정리를 했다. 나에게 다양한 감정으로, 다양한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 어떤 사람은 내가 페스티벌에서 혼자 춤을 추던 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꼈고, 누구는 내가 거리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 다른 이는 게임에서 전남친을 사귀고 후에 일어난 다이나믹한 일, 또 내가 벌인 창작품 썰을 들으며 나의 눈이 반짝인다고 했고. 누군가는 세상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내가 너무 좋다고 했다.


학교를 가면서 버스를 타는 시간은 참 귀중하다. 대학 두시간 정도 되는데, 버스를 한번만 갈아타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처음 30분 버스를 타면 나머지 버스는 80분 정도로 길다. 그때 메모지를 꺼내들고 저런 것들을 적는다. 나에게 사랑이 뭘까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다. 나에게 사랑이란 다양한 형태로 나온다. 사람마다 다양한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운명적인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솔직히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근데 운명적인 사람은 좀 다르다. 내 상태가 맞고 상대방의 상태가 맞아야 하는거니까. 닌텐도도 했다. 역전 검사 2가 참 재미지다.


사실 보컬 연습을 잘 안했다. 첫 합주 마치고 보컬 연습을 더 해야겠다고 음 이탈이 좀 났다고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숙제를 안 해갔을 때의 기분. 음이탈 지적받는건 처음이라서 더 당황했다. 나는 감정을 잘 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녹음본을 들어보니까 감정은 확실히 잘 담았는데 노래 자체가 좋지 못했다. 음 이탈이 났고, 목소리도 많이 떨렸다. 파들파들. 실 위에 뭘 올려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완전 힘을 빼고 매우 약하게 불렀다. 감정을 빼고 음이탈이 나지 않도록. 내가 연습을 안해서 자기 확신이 없으니까, 밴드 멤버들을 만족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별로다. 나는 내가 재밌어야 노래가 잘 불리는데, 노래의 기준을 남에게 넘겨버리니까 노래도 잘 안불렸다.


내 노래를 듣고는 회장이 일부로 그렇게 약하게 부르는 거냐고 했다. 나는 음이탈 안나게 하려 한다고 그렇게 한다 했다. 5번까지 맞춰보니 보컬도 늘어나고 애들도 더 잘 쳤다. 6번째 하기 전에 회장이 이번에는 좀 세게 너 스타일대로 불러보라고 했다. 그게 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회장은 감정으로 노래를 느끼는 나와 다르게 리듬으로 음악을 느끼는 사람이다. 베이스를 치고 베이스를 칠때 정말 행복해하는, 음악의 진동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감정 100%로 음악을 느낀다면, 그는 리듬 100%이다. 그런 사람이 내가 노래를 할 때 내 스타일을 기억해주고 그 스타일대로 하라고 말해줬다는 건 신기했다. 회장은 어떻게 내 노래를 받아들이고 있는걸지 좀 궁금하다.


합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번 곡에 대한 감정 해석을 했다. 방학때 하는 학교 밴드 공연에서 나는 총 3곡을 부른다. 첫번째인 이 곡은 감정이 명확하지 않다. 나머지 두 곡은 곡만 들으면 매우 명확하게 그려지는데, 이번 곡은 가사도 그렇게 멜로디도 그렇고 어떤 한 감정을 알려준다기 보다는 한 장면을 표현하는 듯 하다. 별빛이 박힌 보라색 하늘 아래 안개에 눌려있는 소녀가 생각난다. 곡의 감정도 해석해보고 gpt랑 같이 왜 그럴까 토론도 하고 원곡도 들어보고 커버도 들어보면서 감정 생각을 했다. 확실히 오묘함 그 자체인것 같다.


집에 와선 약간 번아웃이 왔다. 샤워하고 겜방을 보면서 머리를 말렸다. 뭘할까 하다가 컴퓨터활용능력 2급 필기를 공부하기로 했다. 시험지를 보자마자 공부하기가 싫었다.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2024년 기출문제를 gpt에 넣고 내가 이걸 공부할건데 이세ㅖ 뭐시기 했다.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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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재밌어서 난 던전에 들어간 마법사고 문제 하나를 풀면 몬스터 한마리 처치하는 걸로 공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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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서 사서한테 컴퓨터 일반 내용 지식도 배우고 재밌었다. 마법세계 윈도리아 기억할거야.


매일처럼 잠은 오지 않았고 대충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내 녹음본을 밴드 단톡방에 올리고 싶었다. 총 6번의 합주를 했고, 마지막 두개의 녹음본만 올리고 싶었다. 내가 합주를 하면서 듣는 것과 녹음한 것을 듣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이다. 근데 올리면 합주 멤버들이 이새끼 왜 올리지? 못했다고 꼽주는 건가? 이렇게 생각할까봐 너무 쫄렸다. 심지어 새벽 12시 30분쯤이었다. 지금 올리면 개민폐 아닐까?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인터넷에 '합주 녹음' 검색도 했다. 한 커뮤니티 글에서 밴드 멤버 중 한명이 못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며 녹음본 올려주는 걸 멈춰달라는 요청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글이 있었다. 댓글은 전부 그 멤버를 비난했다.


나는 오늘 합주한 멤버들 중 선배인 친구한테 피드백으로 쓰면 좋을거 같으니 단톡방에 녹음본 올려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녀는 괜찮을듯! 이렇게 보내줬다. 그리곤 단톡방에 올렸다. 혹시 내 의도가 오해받진 않을까, 나를 싫어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역시 올리는게 좋았다. 혼잣말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는 좋은 연주를 만들고 싶은거라고!" 스스로에게 응원을 해줬다.


평소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몸은 방학이 되니 심심한지 통 잠에 들지 못한다. 오늘도 3시나 되어서야 잠을 잘 기세여서 뭘 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둘러보던 화면을 끄고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처음에 보려던 영화는 "일하던 세포들" 원작 애니도 봤고 사토 타케루도 좋아하기에 한번 봤는데 뭔가 감성에 맞지 않아서 껐다. 좀 감성적인 영화를 보고 싶었다. "콘스탄틴" 영화를 눌렀다. 워낙 명작인걸 들었고 마지막 빠큐 장면이 기억에 남아서 틀었다. 근데 분위기가 너무 악령 퇴치였고 무엇보다 대사도 거의 없는 그런 영화였다. 5분쯤 보다 껐다. 나는 "브리짓 존슨의 일기"를 눌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이번에는 자막 없이 봤다. 영어 영화를 자막 없이 보면서 편하게 이해하면서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밌더라. 확실히 재밌었다. 자막 없이 보니까 지금까지 보던 브리짓 존슨의 일기와는 다르게 좀 더 나에게 와닿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is skirt off sick?" 이게 뭔말인지 이해가 안되긴 하는데 뭐 중요하진 않겠지. 그정도까지는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마크가 진짜 매력적이다. 마크가 여주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새로운 다이어리 사주는 장면은 그 장면을 알고 있는 나도 다시 설레게 만들었다. 마크 = 순애보 그 자체. 그와 반대인 다니엘 = 바람둥이 g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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