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만으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녀는 노래를 만들 수 있었으나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나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았으나 음악은 즐길 줄만 알았다. '여름이 끝나네'라는 노래를 들려줬다. 언젠가부터 계속 듣게 되는 이 노래에서 늦여름의 아쉬움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제목과 가사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가사를 모르지만 음악을 잘 아는 그녀가 들을 때 같은 걸 느낄지 궁금해졌다. 나는 왼쪽 귀에, 그녀는 오른쪽 귀에 에어팟이 꽂혀 있었다. 노래를 틀었다.
저 멀리, 비늘구름 이어지네
그녀는 고개를 오른쪽 아래로 45도 정도 기울이고 청각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껏 보지 못 했던 진지한 모습이었다. 작곡 작업할 때 이런 모습일까? 30초 정도 그랬을까? 조용히 고개를 든 그녀는 말했다.
"멜로디가 밝고 경쾌해서 겨울은 아닌 것 같아요. 가을도 아닌 것 같고... 아마 봄이나 여름?"
예상대로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맞췄다.
"봄과 여름 중엔 뭐일 거 같아?"
이 놀이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녀는 다시 아까와 같은 자세를 하고 귀를 기울였다.
햇볕에 그을린 쇄골의 넘치는 힘으로 변치않고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노래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답을 내놓았다.
"굳이 고르자면...... 여름?"
"정답."
그녀는 훌륭히 답을 맞혔다, 역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다른 걸까?
한 달 전 새벽 두 시쯤이었다. 말 소리보다 피아노 소리가 큰 술집에서 나는 고백했다. 피아노 연주자가 잠깐 쉴 때 기습공격했다. 그녀는 습관처럼 웃고 있었지만 당황했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워서 고백하길 잘했다 싶었다. 습관처럼 상대를 배려하는 웃음을 짓던 그녀의 다른 표정은 뭘까? 라는 호기심에서 한 고백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친구보다 연인이라는 위치가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노래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제 시원한 목 언저리를 빠져나가네
"그럼 문제 하나 더.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 중 뭐일 거 같아?"
"그것도 맞춰야 되요? 잠깐만요."
쉽게 맞춰버린 게 아쉬워서 문제를 하나 더 내어봤다. 그녀는 가볍게 웃음을 머금고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자, 이번엔 맞출 수 있을까? 관엽식물이 많은 '광합성'이라는 이름의 카페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열대야에서 자주 보던 넓은 잎의 식물을 보니 4월인데도 여름같이 느껴졌다.
여우 같은 너의 눈은 강렬해서, 저편의 기억조차 즐거운 듯 푹 찌르고 있었다
"멜로디가 경쾌한 듯 차분해요. 초여름은 아닌 것 같아요."
"오오."
그녀는 에어팟이 꽂힌 오른쪽 귀에 감각을 집중하며 집중하며 계속 말하고 있었다.
젖은 머리칼이 하얀 셔츠를 두드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배경으로 깔린 멜로디의 음이 점점 사그라들어요. 늦여름으로 할래요."
"오오, 정답. 역시 음악 하는 사람은 다른 건가?"
"노래 제목이 뭐예요?"
"'여름이 끝나네'라는 노래야.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진 일본 밴드 노래. 정확히 맞췄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웃었다. 그 웃음에는 쑥스러움과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이 많을 때 짓는 그녀의 웃음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묻어있다. 처음 그녀에게 끌린 건 그 웃음 때문이었다.
"좋은 노래네요. 다른 곡도 들어보고 싶다."
"응."
노래는 후렴구를 반복하면서 끝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여름이 끝나네 소리도 없이
고백의 답은 일주일 전에 받았다. 아직은 겨울 기운이 남은 가운데 봄의 기운이 다가오는 날이었다. 햇볕은 따스했지만 강바람에는 서늘함이 남아 있었다. 한강을 낀 산책로에서 그녀는 정중히 거절했다. 차이고 나니까 배가 고파진 나는 그녀에게 밥을 사달라고 했다. 그녀는 오늘 밥을 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