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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que H Sep 14. 2024

여권에 쌓이는 도장, 마음에 쌓이는 상처

사증을 추가하면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에게,

여권에 찍힌 도장은 하나의 추억이자 자랑거리일 수 있다.


내가 저 많은 나라를 다니고 이 넓은 세상을 누볐노라,

증명할 수 있는 그들의 기록이다.


지금은 점차 전자 출입국 심사대가 국가마다 도입되고 있고,

대한민국의 여권 파워는 상당하기에,

조금씩 도장이 사라져 가는 세상을 겪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들은 출입국 심사대에서 도장을 찍어준다.


나 또한 이런 도장 하나하나에 마음이 몽글거리던 때가 있었다.

여권에 도장을 받으면,

왠지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하나의 증명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 출입국 도장은,

우리 가족의 상처의 흔적이기도 하다.


내가 가족과 떨어져 보낸 시간의 증명.

우리가 함께하지 못했던 날들의 기록.


이를 잊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흉터로써,

내 마음속에 새겨진 흔적들이리라.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의 깨끗한 여권들을 함께 놓고 볼 때면,

사증까지 추가해 지저분해진 내 여권은,

이들을 두고 밖에서 고군분투했던 내 삶이 투영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작년, 영국으로 파견 나오기 직전 나의 여권이 만료되었다.

추가된 사증과 도장, 손때가 묻어 엉망이 된 오랜 여권을 보내주고,


그렇게 오랜 흉터를 지우고,

내게도 새로운 여권이 생겼다.


마치, 그동안의 상처는 잊고,

이제부터는 함께 그려나가자고 하는 듯하여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그 이후 1년, 우리는 열심히 함께 다녔다.

마치 그 전의 상처를 지우려는 것처럼,

쉴 새 없이 함께 도장을 채워왔다.


모르겠다 지금은.

언젠가 다시 내 일이 바빠지고,

너희도 같이 바빠져서,

나 홀로 세상을 표류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들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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