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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년이싸롱 Dec 12. 2023

치유의 글쓰기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아시나요?

11.

내 불안한 정신은 아슬아슬했다. 버티지 못하고 혼돈 속에 있었다. 요가와 뜨개질, 약복용과 심리상담치료, 좋았던 기억을 더 많이 생각하기 따위는 시멘트 없이 세워놓은 탑 같은 것이었다.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샤워를 하면서 여자의 비명소리를 환청으로 들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들었다.(긴장감이 너무 높으면 환청을 듣기도 한다고 함)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금의 내가 사실은 꿈속의 존재라고 느끼기도 했다. 룸메이트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나는 허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 '본가 부모님은 돌아가시지 않았다. 난 숨어 지내는 것뿐이라는 망상'을 진짜처럼 생생하게 느끼며 불안했다. 악몽에 시달렸고 수면 중 공황발작이 잦았다. 그래도 망상장애는 아니라고 정신과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지는 증상 또한 공황장애의 증상 중 하나이다. 나는 현재가 가짜라는 느낌에 사로잡혔지만, 완전히 함몰되어 미치지는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개새끼를 통한 고통을 느꼈고 나에게 침 뱉는 소리를 들었고 그 밤의 냄새를 맡았다. '가만히 안 있으면 죽여버린다'다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감각이란 정말 무섭다. 뇌는 감각으로 그 시간을 현재처럼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는 같지 않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훈련으로 기억해 내야 한다는 사실을 난 잘 알고 있지만, 그저 머리로 알고 있을 뿐 시도 때도 없이 플래쉬백(그때로 돌아가는)을 경험했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침대에 누워 창으로 하늘을 자주 본다. 몸이 축 늘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다. 몸뚱이가 탈수되지 못한 이불빨래처럼 무거워서 손을 들 힘이 없다. 마음으로는 '일어나, 밥 먹어야 돼' '일어나, 산책 가자.' '일어나 곧 차차언니가 올 거야.' '일어나, 대청소를 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를 계속 외쳐보았지만 가수면상태에서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밀린 설거지를 수도 없이 할 뿐이다. 그러다 눈을 뜨면 하늘이 보였다. 흘러가는 구름만이 시간이 흐름을 알려준다.


그래도 혼자 있지 않는 주말이면 컨디션이 좀 나았다. 사람이 없이 혼자 있는 집에선 불안했다. 혼자서 견디는 시간들이 외롭고 버겁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앓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기를 기피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는 외출하지 않거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난 그게 싫었다. '쓸모없는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더 망가지다가는 사람 구실도 못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정신과에 가서는 내가 미쳐가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룸메이트 언니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던 내 결심과 각오도 점점 무너져 내렸다. 웃지 않게 되었고, 멍하게 딴 세상에 갔다 오곤 했다. 22년 12월 겨울 룸메이트 언니와 저녁 겸 술을 한 잔 하다, 죽어야겠다는 감정의 정점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베란다 창을 열고 아래를 쳐다봤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바닥이 검은 물처럼 나를 빨아들일 것 같았다. 머리를 숙여 영원히 아래로 떨어지고 싶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언니는 본인이 먼저 죽겠다며, 베란다 난간으로 몸을 던졌다.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룸메이트언니의 몸이 난간 너머로 넘어가는 게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난 상체가 다 넘어간 언니의 하체를 필사적으로 잡아끌어 뒤로 누웠다. 그리고 언니는 말했다. "이 집에서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남은 사람은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언니는 '골로 갈 뻔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떻게든 밖에 나가려고 하기 시작했다. 살아야 했다. 누워있을수록 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혼자 남은 낮시간이면 동네 하천을 돌아다녔다. 폭식과 절식을 수시로 하는 섭식장애가 생겼고, 우울했다.


2020년 치료를 시작할 때, 난 직면하기를 위해 글쓰기를 했었다. 노트에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을 용기로 썼었다. 그때 많이 좋아졌었다. 글쓰기만큼 내가 나를 바라보고 감정을 다독이기에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정직할 용기와 처절함으로 반복해서 계속 같은 날들을 썼다. 기분을 썼고, 상태를 썼고, 기억을 썼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썼다. 종일 자던 낮시간에 글을 쓰니 발작의 빈도가 낮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예기불안도 조금은 줄었다.


낙서를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기분을 써보고 잊지 못하는 날들을 반복적으로 쓰면서 기억을 재조정했다. 내가 과장하는 장면은 덜어내고(나는 좀 과장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걱정도 많고 쓸데없는 생각도 많다.) 최대한 자세하지만 과하지 않게 묘사하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쓴 글을 읽으면, 별 것 아닌 듯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너무 사소해서 웃음이 나는 상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구질구질한 내 모습, 내가 잘못한 순간들, 내가 타인에게 준 상처들,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용서하는 마음도 생기긴 했다. 마음이 여러 가지 갈래로 나 있어, 기분은 이랬다가 저랬다가를 계속하다 보니 기분과 판단도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또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리는 나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사건을 보려고 노력했다.(정신과 선생님들이 늘 걱정하시는 면이다.) 어떨 때는 부작용인 듯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아직도 나는 가끔 억울하고 화가 난다.


내가 치유의 글쓰기를 시작한지 거의 일 년이 지나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며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시리즈에는 치료사(의사)가 환자에게 자서전 쓰기를 하도록 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쓴 부분을 형광펜으로 색칠하여 내 인생에서 어떤 부분에 부정적인 감정을 얼마나 느꼈는지 눈으로 확인하게 해 준다. 난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지만, 혼자 자서전 쓰기를 하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것들에 밑줄을 그어가며 내가 얼마나 상처받고 아팠고 어디에서부터 이런 내가 시작되었는지를 이미 해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증거가 바로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이다. 글쓰기는 종 잡을 수 없어 나도 잘 모르겠는 나를 정리하는 일이며 허상들과 마구 섞여있는 객관적 사실을 골라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객관적 사실을 골라내서 정리하고 나면 명확해진다. 내가 바로 현재를 살고 있고 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은 현재에 있지 않음이 말이다. 얽기 설기 그냥 세워놓아 무너져버린 정신의 탑을 견고하게 다시 쌓고 싶었다. 난 아직도 이 탑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저 상처가 깊어서 내 무의식은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란 것을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힘이 없다. 나에게도 없었다. 그런데도 상담선생님은 "광년이싸롱님에게는 힘이 있어요."라고 말해주었고, 난 아니라고 도망치고, 불안하고, 울기도 하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글쓰기를 한다. 나의 글쓰기는 치유의 글쓰기다. 아픈 나를 내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다시 열려버린 마음의 서랍을 나는 글쓰기를 통해 정리하고 있다. 혼돈으로 가득 차 있던 서랍 안에서 허상을 빼고, 감정을 묶어놓고,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며 받아들였다. 서랍을 다시 열어도 깨끗하게 정리된 서랍을 마주하게끔 말이다. 좋은 일이 꼭 좋은 일은 아니고 나쁜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회사 대표의 성추행으로 열린 서랍을 난 글쓰기로 정리하고 있었고, 오히려 닫아 잠가놓았을 때보다 한층 더 성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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