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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개돌개 Jun 14. 2024

엄마의 노동재해를 마주한 K장녀, 두 여자의 노동일기.

소설 '초파리 돌보기' 감상 및 분석문

초파기 돌보기, 임솔아 작가

2022년 제13회 젊은작가상 대상


원영은 난치병을 앓고 있다. 점점 머리가 빠지고 

쇠약해져만 간다. 딸 지유는 원영의 난치병이 초파리를 돌보던 실험 아르바이트에서 시작된 산업재해라 의심한다. 하지만 원영은 자신만의 책상이 존재했던 당시와, 초파리에게서 발견한 정교한 무지개빛 광휘를 사랑할 뿐이다.

딸 지유는 초파리를 돌보는 사람에 대한 소설을 쓴다. 해피엔딩으로 끝을 낼까? 원영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결국 지유는 초파리 실험에서 발견된 로열-젤리를 먹고 난치병을 이겨내는 결말을 써낸다. 그것은 현실일까. 아니면 원영의 바램을 이뤄주고 싶었던 지유의 마음이었을까...


자신만의 책상을 갖고 싶었던 여성과 그를 애증하는 여성의 이야기.


임솔아 작가의 ‘초파리 돌보기’는 작가 본인을 비롯하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 모녀들에 대한 자전적인 소설처럼 느껴졌다. 어머니 내지는 모성애에 대한 여러 시선과 묘사는 수많은 문학에서 익히 찾아볼 수 있었지만 임솔아 작가의 시선은 단순한 모성애의 숭배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변해가는 모습에 죄책감이나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은 미워하기도 하는 것. 속된 말로 ‘K-장녀’로서의 모녀 관계를 현실적이지만 비유적으로 담아낸 소설이라는 것이 ‘초파리 돌보기’에 대한 나의 첫 감상이었다. 그렇기에 임솔아 작가의 ‘초파리 돌보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이입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는 찬사를 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파리 돌보기’의 또 하나의 매력은 문장에도 있다. 전반적으로 문체가 간결하고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묘사가 많은 글은 아니지만 유독 초파리를 아름다운 존재처럼 느껴지도록 섬세한 묘사를 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부분에서 지유가 원영의 삶을 존중하려고 노력 한다는 심리를 엿볼 수 있어 의미 있게 볼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덤덤하게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은 밑줄을 긋기에 충분했다. 글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다음 이야기, 그다음 이야기로 더 빨리 뛰어야만 했다. 그래야 잊히지 않을 수 있었다. 매번 시험대에 올라서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무엇인가 잊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뭐였더라.’ 라는 지유의 독백이 가장 인상 깊게 가슴에 남았다.

소설은 딸 지유의 시점에서 엄마 원영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주로 하여 건망증에 걸린 지유의 일상을 함께 이야기 한다. 초파리를 양육하는 일을 했던 원영의 이야기는 원영에게 양육된 지유의 이야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원영과 지유 둘의 관계성이나 원영의 생애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온전히 원영의 1인칭 시점으로 스스로 지난 생애를 돌아보는 식의 자서전처럼 진행되었다면 단순히 어떤 사회 문제를 토로하는 필요에 의한 글이 되었을 것 같다. 

구성상의 특징으로는 지유에게 있어 엄마의 병의 원인이자 엄마를 구원한 것이 모두 초파리였다는 복선의 배치와 구조가 좋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초파리는 지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원영의 병이 자신을 한 몸 바쳐 양육하다 몸이 망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지유가 초파리 때문이라는 가설을 내새우게 된 것이라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유와 초파리 둘 다 원영에 의해 끔찍할 정도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 누군가는 아름답지 않고 실패작이라 할지라도 원영에게는 주머니 속에 몰래 훔쳐올 정도로 무엇보다 아름다운 존재라는 점이 동일하다. 이 때문에 나는 지유가 원영이 아팠던 원인이자 원영을 낫게 할 사람도 초파리, 즉 지유 자신이라 생각했다는 결말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유는 원영을 위해 작품에 대한 신념을 꺾어서라도 원영이 깔끔하게 낫는 해피엔드를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초파리 돌보기’에는 크게 두 가지 서사가 존재하는데 원영의 원인불상의 병과 똑같이 원인불상인 지유의 건망증이다. 두 사람의 각자 다른 서사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도 느껴질 수 있지만 치온과의 마지막 대화 장면에서 나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부러 괴로울 정도로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자리를 차지하고 너스레를 떨던 어머니에게 치온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처럼, 지유도 원영의 거대한 모성애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과 함께 동반된 어떤 경의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엄마와 관련된 것을 필요에 의해 잊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치온의 말처럼 무서움에 내성이 생기고 어린 아이를 벗어나면서 지유도 더 이상 원영의 커다란 사랑과 희생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영리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인물의 성격 구현 부분이었는데, 구구절절 원영과 지유의 전사를 나열하거나 원영에 대한 지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지유가 은유적으로 엄마에 대한 자신의 스탠스를 드러내는 것이 좋은 서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영에 대해서도 초파리 연구실에서 일했던 것을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던 것이라 생각하거나 텔레마케팅 사무실에 완구 물품을 잔뜩 사서 장식하는 등 사소한 행동들이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고 전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 있어 가슴이 찡하게 다가왔던 부분이었다. 원영과 지유 두 사람이 갈등하게 되는 것은 초파리 돌보기가 원영의 병의 원인인지에 대한 쟁점이었는데, 이때 원인이라 주장하는 지유와 그런 가능성을 염두 하는 것조차 원치 않는 원영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도 둘의 가치관에 대한 차이점을 느껴볼 수 있었다.

‘초파리 돌보기’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 즉 주제는 엄마의 거대한 사랑과 희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허리를 피지 못하고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면서도 양육을 해내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내가 어쩌면 엄마를 아프게 한 원인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그런 희생에 대한 경의. 복잡한 감정으로 얽혀있지만 결국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두 여성의 이야기는 거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책상을 가지지 못하고 무경력 50대로 취급되면서도 끝까지 자신만의 일을 가지고 싶어 하는 원영의 모습에서 여성 노동 문제 또한 함께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회적으로도 관통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파리 돌보기’가 젊은 작가상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의 완성도를 얻게 된 것은 담담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꾸준히 독자를 이끌어가는 글의 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솔아 소설가의 초파리 돌보기는 눈을 이끌만한 커다란 사건도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는 엄청난 감성도 없는 담백한 글에 가깝다. 하지만 그 담백함 속에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는 사실과 같은 이야기를 소설적으로 담아내는 능력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누구나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에서 소설적인 것들을 찾아내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임솔아 소설가는 이러한 부분에 탁월한 작가라는 평을 하고 싶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전에 보았던 설문 하나가 생각난다. 과거로 돌아가 20살의 어머니를 만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나요? 라는 설문에 혹자는 “엄마, 나 낳아서 고생하지 말고 엄마 삶을 살아.” 라는 말을 남겼고 공감의 의미로 몇 천 번 이상의 공유가 되었었다. 이 문장 하나가 공유하고 있는 복잡한 감정에 눈물 흘렸던 이들 중에 임솔아 작가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 중에 나도 포함되었기에 임솔아 작가의 ‘초파리 돌보기’에 작품성을 분석하기 보다도 그대로 글 안으로 흡입되어 큰 감명을 받았던 것에 집중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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