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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개돌개 Jun 17. 2024

질투, 시기. 문득 싹튼 어두운 감정을 어떻게 할까.

소설 '미노리와 테쯔' 감상 및 분석문

미노리와 테쯔 / 박상영 작가

창작과 비평 191호


















아보카도의 싹, 판도라의 상자. 문득 튀어나오는 감정의 불씨


소설 ‘미노리와 테쯔’는 마음 깊은 곳에 잔재하고 있다 어느 순간 뿅 하고 튀어나오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미묘하고 불편한 마음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희주의 경우에는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수민과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소외감과 자신을 잃은 것 같다는 회의감이었을 것이고, 미노리의 경우엔 수민을 향해 본 적 없는 반짝이는 눈을 해보이던 테쯔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실망감과 절망감이었을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라오듯 둘의 인간상은 수민이라는 빛이 곁에 있었기에 부차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림자의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희주는 자연스럽게 빛에 따라가는 그림자처럼 수민에게 자신이 동화되어 ‘수민과 희주’가 아닌 ‘수민’ 한 명으로 합쳐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민의 의견만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에서 감사함을 느낀 자신을 깊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아보카도 안에서 싹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 희주가 그 싹을 자각 했을 때에는 수민에 대한 열등감이나 소외감도 있었을 테지만, 그동안 수민과 함께 하며 온전한 나의 자아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수민이라는 빛에 소속되어 있었던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지는 않았을까? 미노리는 더더욱 그러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여 함께 생계를 꾸리고 인생의 반쪽으로 함께 했던 테쯔를 한순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나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만 같은 공허함과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공존했으리라.

이처럼 ‘미노리와 테쯔’는 마음 깊은 곳에 담겨 있던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가 한순간 열리고야 말아 평화로운 듯 했지만 누군가에겐 결핍을 야기하고 있었던 기존의 환경을 더는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때 피어난 싹을 무시하지 않고 행동하는 미노리와 마음 더 깊은 곳에 싹을 가둬버리는 수민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여 둘의 상황에서 나는 어떤 방향으로 싹을 대처해낼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빛을 떠받치고 있는 그림자의 사람들이었던 희주와 미노리였지만 미노리가 먼저 그 짐에서 벗어난 것은 변화할 수 있는, 기존의 그림자였던 자신을 소진해버리고 그림자에서 변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불편한 감정의 싹을 잘라버리고 그동안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소진시킬 용기가 없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용기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더 이상 변화가 두렵다는 이유로 비겁하게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나오는 듯하다. 그러한 면에서 미노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더 이상은 나도 툭 튀어나온 그 싹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겠다는 듯 사람들과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희주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도록 해준다.

꼭꼭 숨겨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한순간 참지 못하고 열어버렸을 때 세상이 완전히 변화하게 되었지만 상자 안에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상자를 열어버린 둘에게 남은 것은 수많은 묻어왔던 감정의 골을 겪은 후에야 상자 맨 밑바닥에 숨죽이고 있었던 새로운 희망을 찾는 것으로 귀결 되지 않을까. 이 소설 속에서 ‘아보카도에 튀어나온 싹’은 묻어왔던 마음이 무시할 수 없도록 한순간 뿅 튀어나온 순간을 말함과 동시에, 싹을 자각한 순간 열려버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노리와 테쯔’는 이러한 미묘한 감정을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자신의 마음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전개한다. 먼지 쌓인 상자 속 숨겨왔던 무언가를 꺼내어 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에 있어 이러한 시점의 선택은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보카도의 싹이라는 메타포를 이용하여 잊고 지내던 한순간 튀어나오고야 만 감정에 대해 객관적 상관물로서 설명해주는 방식에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듯 했다. 문체는 감각적인 묘사 없이 있었던 일들을 3인칭 시점의 영화로 쭉 상영 하듯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식으로 진행되는 문장들로 진행되는데, 희주가 미주와 함께하는 일렬의 상황 속에서 언제나 제 3자로서 존재했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듯 해 이러한 문장의 사용도 의미 있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문득 소설 속 수민과 희주의 관계를 보며 디즈니 영화 중 하나인 ‘공주와 개구리’에서 보았던 티아나와 샬롯이 떠올랐다. 티아나는 미국계 흑인 저소득층으로 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은 후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잠을 줄이고 동전으로 가득 찬 팁 박스를 채우며 노력하지만 무시당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티아나의 친구 샬롯은 부르주아 아버지의 밑에서 평생을 공주님으로 살아오며 사랑과 동화로 가득한 실패 없는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둘은 수민과 나와 같이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로 지냈지만 둘이 가지는 삶의 결은 너무나 다르다.

영화에서 가장무도회를 하자 티아나는 빵을 파는 역할, 샬롯은 무도회의 주인공인 공주 역할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티아나는 테이블을 엎으며 포도주를 뒤집어쓰게 되고 샬롯은 그런 티아나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주 옷을 입으라고 흔쾌히 건네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샬롯은 절대 나쁜 캐릭터가 아니다. 푼수 같은 면이 있긴 하지만 친구인 티아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출신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대한다. 수민이 그러했듯 젊음의 싱그러움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티아나 또한 자신과 출발점부터가 다른 샬롯을 가장 곁에서 보면서도 샬롯을 미워하거나 이에 주눅 들어 하지 않는다. 결말에서도 개구리 왕자는 공주인 샬롯과 키스를 나눠야 했지만 티아나를 선택하고 티아나를 보며 처음 지어보이는 반짝이는 표정을 짓는다. 이는 ‘미노리와 테쯔’와는 전혀 반대의 양상을 보여준다.

어릴 때에는 그저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 이야기로만 보였던 ‘공주와 개구리’를 이제 25살이 되어 다시 보자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희주와 달리 반짝이는 친구 수민을 열등감 없이 사랑하고, 반짝이는 공주 대신 삶을 살아가기 바쁜 웨이트리스가 주인공이 되는 것. 이것은 환상과 동화를 향유하는 디즈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미노리와 테쯔’ 그리고 ‘공주와 개구리’는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과 환상을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와 개구리’가 환상의 이야기에서 궤도를 벗어난다면 티아나는 샬롯과의 친구 관계를 이어가는 와중에 아보카도에 싹이 갑작스레 뿅 하고 튀어나오는 것같이 한순간 둘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없었을까? 나는 왜 젊음의 싱그러움의 힘을 발휘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샬롯과 수민에게 불쾌함을 느꼈을까? 나 또한 상자 속 피어오른 싹을 무시하곤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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