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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May 08. 2024

누나의 오월은 푸르렀겠지

<누나의 오월>_윤정모, 산하



기열은 1980년, 누나의 설득으로 부모를 떠나 광주로 유학을 온다. 동생만큼은 제대로 공부를 시키고 싶다던 누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혼자였다면 부모님이 소라도 팔아 학교를 보내주었을 것을, 하필 남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모든 지원은 동생에게로 쏠렸다. 학교 보내달라고 소도 훔칠 정도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던 누나의 반항은 잡아달라 꼬물거리는 동생의 손 앞에 힘을 잃었다. 너만이라도 공부시키겠다 야무진 계획을 꿈꾸던 누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꽃집에 취직했다 거짓말을 하고 다방에 다녔다. 누나는 기열에게 있어 거짓말쟁이였고 창피스러웠으며 원망스러운 사람이었다.


누나의 죽음 또한 그러했다. 오월의 어느 날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고 사라진 누나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급하게 돌아와 광주가 위험해졌으니 다짜고짜 기열을 시골집에 걸어서라도 데려다주겠다 나선 누나는 그 긴 길 위에서 허망하게 죽고 만다. 왜 누나가 죽었는지 기열은 알 수 없다. 다만 저를 두고 먼저 가버린 누나가 미울 뿐이다.


작품의 중반을 넘어서까지도 누나의 죽음은 우연히 불행을 겪은 개인의 가족사로만 다루어진다. 그러나 청소년이 된 기열이 누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에서 사회적 변화와 시대적 비극을 품은 역사로 치환된다.


남아선호사상에 짓눌려 꿈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운명에 체념한 채 남자형제의 성공을 위한 불쏘시개로서의 삶을 살아간 시대의 수많은 여성들이여! 정치적 목적이나 의도보다도 인간적 도의와 공동체정신으로 시민군을 보살피다 희생된 그때 그 광주의 시민들이여!


단순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서 사회, 시대적 흐름을 볼 수 있는 역사적 시선의 확장과 더불어서야 비로소 기열은 누나와 진정한 재회를 할 수 있었다. 우리 역시 그렇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해마다 4월에는 제주를, 5월에는 광주의 역사를 공부하고 기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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