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토닥임이 필요한 순간

<댈러웨이 부인>_버지니아 울프, 솔출판사

by 피킨무무







마치 원테이크로 카메라가 집요하게 인물의 동선을 쫓는 것처럼, 동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다수의 인물들의 머릿속을 주욱 훑어보고 나온 느낌이다. 서술자가 재빠르고 끊임없이 바뀌는 느낌을 주는 터에 다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 마치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 엑스의 다중 텔레파시 능력을 체험한 듯하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가장 주목되는 이는 댈러웨이 부인, 그리고 자살자 셉티머스다. 둘은 작품 내에서 달리 만남이 없고 고작 마지막 댈러웨이의 파티에서 다른 사람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되는 정도의 미약한 접점만이 존재하지만 이야기 내에서 가장 대조되는 위치에 있으며 (삶과 죽음, 속물성과 고결성) 댈러웨이 부인의 정신세계에 다분히 큰 영향을 끼친다. 속물적인 삶이냐, 고결한 죽음이냐를 두고 머릿속에서 잠시간 방황하던 댈러웨이 부인이 다시 현실세계의 파티장으로 돌아오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사실 이야기 기술법이 독특하다는 것 말고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함인지 난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책을 던져버리기 전에 어거지 논리로나마 이해를 시도해 보자.


죽음을 갈망하지만 실행하지는 않는 댈레웨이 부인을 두고 단순히 속물적 인간 혹은 기만자로 치부할 수는 없다. 변화무쌍한 가능성 대신 안정적인 현실을 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생존본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응당 따르는 변화를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은 동시에 존재하며(자살자와 생존자, 끊임없이 살리려는 아내와 죽으려는 남편의 공존) 속물성을 가진 고결함 혹은 고결한 속물성이라는 아이러니도 가능한 것이 시간(반복되는 빅벤의 종소리)이 다스리는 우리의 세상이다. 고로 이 책은 그 자체로 난해하고 녹록치 않은 삶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삶은 이렇듯 변덕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역설과 수많은 사연으로 가득 차 있으나, 살아나감으로써 이해를 시도해 볼 수 있다.(이 책도 마찬가지, 어려운 책이지만 우선 읽음으로써 해독을 시도해 보라.) 그러므로, 어찌 됐든 지금을 살고 있는 당신, 우리(또한, 이 책을 힘겹게 읽은 당신, 그리고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독서위기의 순간에 셀프 토닥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시 실제 삶에도 이런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주저하지 말자, 나를 북돋아주는 것에.


"사랑을 하는 것은 한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p.35


"(...) 그들은 늙어가리라. 중요한 어떤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시시한 이야기에 둘러싸여서, 외관이 흉하게 되고, 그녀의 삶 속에서 손상되어 매일매일 부패와, 거짓말과, 잡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이것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의사를 소통하려는 시도였다. 반면에 사람들은 신비하게도 자신들을 피해가는 중심에 다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친밀했던 관계는 멀어져가고, 황홀함은 시들고, 사람은 혼자였다. 하지만 죽음에는 포옹하는 힘이 있었다."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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