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_이기호, 문학동네
곱슬한 털에 큰 얼굴의 이시봉,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입양해 온 강아지다. 온종일 명랑한 그 강아지를 쫓다 트럭에 치어 죽은 아빠로 인해 사랑받던 집안의 막내였던 개는 한순간에 원망의 투사체가 되어버리고 엄마는 할머니 간병을 핑계 삼아 도망치듯 집을 떠나고 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버릇처럼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 이시봉이 뭐,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라는 귀한 혈통의 개라고? 이런 찌질한 나와 눈칫밥 먹고사는 게 정말 너를 위한 일일까?
이시봉은 종일 명랑하지만 상처 입은 인간은 우울하고 투쟁하는 삶에 지쳐있다. 종을 뛰어넘어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은 죽는 날까지 없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필요해, 사랑은 불가항력이다. 일어설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끊임없이 여기저기에서 얽혀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도도 흥미롭다. 그중 형집행인과 정채민대표의 사연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뒷이야기가 궁금.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면 필독서, 동물복지를 대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내 말은, 이론적으론 인간과 동물은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어. 어쩌면 동물들은 인간을 그렇게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은 아니라는 거지. 인간은 자기에게 이로운 존재나 친근한 동물들에게 더 높은 계층을 부여하고, 그 친구들에게만 복지를 부여하려고 애쓴다는 거야."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