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화낼 일이 많아진다.
체력이 우선. (22번째 이일)
며칠동안 컨디션 난조로 몸을 일으키는 것이 힘들어 졌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한몫해서
화장실에도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종이인형처럼 나풀거리며 걷기 일쑤이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그저 잠만 자고 싶은 몸이 된 듯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던 와중에
누군가 지하철 앞자리를 스틸하는 일이 생겼다.
지하철은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은 내 앞사람이 일어나 내리면
다음엔 그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앉곤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룰이다.
옆에서부터 비집고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던 나를 밀치고
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순간 얼굴이 울긋불긋 해질 정도로 화가 치솟음을 느꼈다.
그냥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는 곳이니
오늘도 그중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그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엄청 피곤하기라도 했나 보네 하며
무시하고 잊어버렸겠지만
그날은 나도 서 있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었나 보다.
나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그 사람의 무릎에 딱 붙어 서서
그 사람조차도 무릎을 구부린 채 옴짝달싹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공공장소에서 무슨 추잡한 행동이었나 싶은데
그 순간은 그런 생각 같은 건 조금도 나지 않고
그저 나를 밀치고 내 앞자리에 앉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고만 싶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한들
그 사람이 그런 마음이 들었을 리 없고
어쩌면 그 사람은 전혀 느끼지 못할
나 혼자만의 앙갚음 일뿐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그 사람을 신경 쓰느냐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단 30분으로 나의 하루가 완전히 망가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그 상황으로 돌려서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나도 둘 다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평소보다 힘에 부쳤던 몸 때문에
그런 것들이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감정도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몸이 아프고 보니 알겠다.
몸이 힘들면 마음은 바닥을 보인다.
더군다나 남에게 베풀 마음이라니.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나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라고 해도
그나마 조금 남은 에너지는 모두 나를 위해 쓰여야 하니까
결국 나를 화나게 하고
나의 하루를 망치게 한 것은
나의 아픈 몸과
바닥난 체력이었다는 것을.
남을 위한 것이든, 나를 위한 것이든
우선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