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기. (20번째 일일)
길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이제 좀 살만한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긴팔옷이 필요해졌다.
눈에 보이는 가을의 것들은
온통 맑고, 깨끗하고, 알록달록하고
어느 하나 더운 여름날 같이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그런 가을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그 가을마저도 인사를 고한다.
그리고는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예전보다 짧아진 봄가을 탓에
다가오는 여름과 겨울을 맞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나는 베란다에 초록식물 몇 가지를 키우고 있는데
우리 집에서 바람과 해가 가장 잘 드는 곳이 안방 베란다다.
같은 날 키우기 시작한 식물인데도
해가 잘 드는 베란다에서 자라난 것들이 유독 성장이 빠르다.
우리 집 식물들에게 최고의 복지를 가져다주는 곳인 셈이다.
그렇게 한 계절 해와 바람을 풍요롭게 즐기던 식물들도
겨울을 앞두고 실내로 이사준비를 해야 한다.
아무리 집 안에 딸린 베란다라고 해도
겨울의 추위를 견디기엔
나의 식물들은 너무 작고 연약하다.
초록색 잎이 무성한 것들이기에
조금이라도 시기를 놓치면
금세 그 싱그러움을 잃게 된다.
베란다에서 자라며 구석구석 뭍은 먼지도 닦아주고
불필요한 가지들은 미리 잘라준다.
겨울을 나는 동안 병충해로부터 최대한 보호하기 위하여.
그리고는 한 계절 머물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아준다.
매일 눈에 띄어서 물 주기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 집은 겨울이 되면
실내에 생기가 돈다.
한주 한주 겨울준비를 미뤄왔지만.
더이상은 시간이 없다.
매우 귀찮은 일이지만
내가 아끼는 그것들과 내년에도 함께 하기 위하여
이번 주말에는 기필코
겨울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