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 일단 싫기는 하지만. (1번째 이일)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눈앞이 맑지 않아 싫고, 살갗으로 느껴지는 꿉꿉함이 싫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며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일이다.
비가 오는지.
온다면 내가 이동 중인 시간에 오는 건지.
올해는 유난히 흐린 날이 많았다.
온난화 때문일 거라고 하는데
그 얘기는 갈수록 이런 날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맑고 쾌청한 날들이 귀해지는 미래가 벌써 아쉽기만 하다.
그날 아침은 거무스름한 하늘에 안개가 자욱했다.
일기예보도 하루종일 비소식으로 가득했다.
그저 기대 없는 하루가 예상되지만, 부디 이동 중엔 비가 오지 않기를.
사시사철 뚜벅이로써 간절한 바람이었다.
다행히 출근길엔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퇴근길엔 우산이 무의미할 정도로 거세게 비가 왔다.
지하철엔 사람이 가득했고 옆사람의 우산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내 운동화로 스며들었다.
발끝까지 젖고 있었다.
그때 앞에 빈자리가 생겼음에도
젖은 옷 때문에 앉을 수가 없었고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씻고 싶다.'
개운한 몸으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다.
이런 날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그 순간은 정말 행복 그 자체인데.
순간 웃음이 지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더 고되질수록
그 순간이 더 기대가 됐다.
설렌다.
집까지 걸어가는 길.
그때부터는 굳이 비를 피하지 않았다.
지친 몸이었지만 걸음은 가벼웠다.
띠리리릭.
도어록소리와 함께 드디어 나는 집에 돌아왔다.
행복했다.
곧이어 샤워기 아래 서서 따뜻한 물을 만끽했다.
샤워 후 에어컨 바람은 조금 차다가 이내 몸의 열기를 기분 좋게 식혀주고 있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뻐근한 허리를 침대에 뉘었다.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짐을 느끼다가 곧 잠이 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온몸 가득 차게 행복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대하면서 한동안 설레었다.
아침부터 기대 없이 시작한 꿉꿉하고 지친 하루는
그렇게 젖었기에, 지쳤기에.
개운하고 편안한 하루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