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렇게 스팸을 파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아쉬울 줄 몰랐지. (104번째 삼일)

by 김로기

꽤 오랜 기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주방 서랍 안에는 스팸이 잔뜩 쌓여있다.

아니 있었다.

남편도 나도

일 년에 두어 번씩 명절 무렵이면

늘 손에 들려 있던 선물세트에는

언제나 빠지지 않고 스팸과 식용유가 있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쌓여가는 스팸과는 달리

달랑 두식구가 소비할 수 있는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통조림답게 유통기한도 꽤나 길어서

서랍 안에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중고물품을 파는 곳에서 요긴하게 용돈을 벌어다 쓰곤 했다.

그런데 남편과 내게 더 이상 명절 선물이 들어오지 않고

몇 개 남겨 두었던 스팸과 식용유가 떨어져 가니

슬슬 그때 팔아넘긴 스팸이 아쉬워졌다.

막상 먹고 싶어 구매하려고 하니

작은 캔 하나에 삼사천 원씩 하는 것이

새삼 비싸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 돈 주고 사 먹을 일이 없다가

갑자기 몇천 원씩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것이 왜 이리도 아까운 건지

마지막으로 중고 사이트에 올려 판 일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낱개로 비싸게 사려고 하니

그때 저렴하게 몽땅 팔아넘긴 게 사뭇 아쉬워졌다.

오히려 내가 다시 스팸을 사기 위해 중고 사이트를 뒤지고 있을 판이었다.

다른 것들은 더 비싼 돈을 주고도 아무렇지 않게 장바구니에 넣고만 있는데

이상하게 스팸을 살 때만큼은 망설여진다.

예전에 흔하게 굴러다니던 스팸들을 여전히 잊지 못한 듯싶다.

이런 날이 올 줄 예전의 내가 알지 못했듯이

내가 스팸이 가득 들어있는 선물세트를 받을 날이 또 올까 싶지만

온다면 그때는 절대 팔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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