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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밖에.

회색빛 기억. (35번째 이일)

by 김로기

내가 어렸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나라가 휘청일 정도로 모두가 어려운 날들을 보낼 때였다.

그런때에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동생과 둘이 집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고작 여덟 아홉의 아이 둘이 집을 지킨다는 말은

그냥 말 뿐이었어야 했지만

정말로 우리는 집을 지켰다.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왜 왔는지는 짐작이 갈 만한 사람들로부터

나와 내 동생은 집을 지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고

어쩌면 나였어도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도 어렸다.

그 사람들도, 그리고 그 상황들도

정면으로 마주치기에는 너무 두려웠다.

우리는 늘 볼륨을 낮춰 텔레비전을 봤었고

대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민감했다.

그래서 주말이 아닌 공휴일이 싫었다.

학교에 가 있으면

우리끼리만 집 안에 있을 일은 없었으니까.

남들은 집에서 이것저것 하며

쉴 생각에 들떠있던 날들이

우리에게는 그저 가슴 졸이며

보내야 했던 날들이었기 때문에

마냥 좋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 큰 성인이 된 지금도

대문밖에서 소리가 들리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 소리가 향하는 방향이

내가 있는 집은 아닌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예전만큼 크게 불안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 큰 내게 그런 불안이 남아있다는 것이

조금 안타깝기는 하다.

어린 시절 기억의 전부가 그런 회색빛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대문 밖의 소리는 내게 불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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