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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01. 2017

내가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테레지나였다.
내가 이 이름을 부르면 거인들, 난쟁이 요정들, 큰 갈색 모자를 쓴
버섯 무하모르들-이 버섯들은 줄기는 아무 맛이 없고 모자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늘 모자를 벗는다-,
나들이옷을 입은 용들, 늙은 러시아 농부인 라브로보의 참나무들,
내 어린 시절의 이 모든 친구들이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하고,
북풍 에핌과 동풍 키트룬이 내 발밑에 얌전히 누우며 이 이름을 속삭인다.

테레지나.......
내가 이렇게 오래 산 건 사랑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언제인지 알 수도 없고,
어디가 될지 알 수도 없는,
언제 어디에선가, 어떤 다른 사람이,
내가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임무를 완수했고 교대가 보장되었으니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쓸데없는 명예나 잔뜩 뒤집어쓰고, 담요를 무릎에 얹고,
실내화를 신고 머리엔 꼴사나운 낡은 모자를 얹은 채 불가 안락의자에 웅크린 노인으로,
아르파 공이 돈을 세듯 자기가 쓴 책과 글만 헤아리는 노인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에 얼마나 놀랄지 나는 안다.
또한 세월에 닳아 뾰족해진 내 표정, 나를 회색 늑대와 비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맹금류 같다고도 하는 내 표정이
그런 다감한 격정의 표현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사람들이 나를 인색하다고 말하고, 내가 질투하듯 내 재산에 신경 쓰는 것도 사실이다.

테레지나.......




로맹 가리 <마법사들> p64-65











Romain Gary






어릿광대 옷을 입고 불 위에서 춤을 추는 작은 인형 로맹가리
꿈이 비밀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꿈에 제 모가지를 내놓은 가장 늙은 아이

새 시대에는 새 환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직감했다.
버섯백성들이 투덜거리다는 하소연..
(내 몸통은 맛이 없다니)

12권의 로맹가리 책을 낸 마음산책은 앞으로도 몇 권이 더 있다고 한다.
<마법사들>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로 재기하기 직전에 낸 소설이다.
자신의 아들 디에고를 위해,
자신의 유년을 기리며...

<마법사들>을 읽으면 로맹 가리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내 소감은 (아직 60 몇 페이지를 읽었지만, 읽다가 잠시 멈춰지만)
쫓아가기 바빠 미쳐 몰라보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니다.
여기서 쓰담쓰담 받은 기분이었다.

<마법사들>에서 이미 그는 가명 에밀 아자르, 샤탕 보가트 등의 삶을 그렸고,
죽음 이후까지도 예상했던 것만 같다.
쫓고 있을 나같은 독자를 만나기라도 한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디까지 상상하고 썼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느꼈을 쯤에
그는 테레지나를 부른다....
테레지나...

테리지나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내가 이 페이지를 빠르게 두어번을 읽고,
멈춰서 다시 적어보고 있는 것은 분명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가 도입부 첫 문단만도 열다섯 번이나 다시 썼고,
수기 원고를 거듭 수정한 뒤 타이핑한 원고마저 가필한 곳이 너무 많아
다시 타이핑했으며, 마지막 교정지까지 수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60페이지까지 읽는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어지러운 대입이 나로서는 필요했는데...
그만큼 그가 각별히 애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인지 알 수도 없고,
어디가 될지 알 수도 없는,
언제 어디에선가, 어떤 다른 사람이,
내가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게 될 것이다.








* 로맹가리 작품연보 보기 http://roh222.blog.me/220290257215


* 로맹 가리 매거진 보기 https://brunch.co.kr/magazine/romai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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