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나는 아직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내가 지금 대체 뭘 읽은 거야?'라는 아주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아주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다. 유명했던 그를 몰라본 게 나의 무지였을 뿐이다. 아무튼 그 소설(무의미의 축제) 이후로 다시는 쿤데라 소설은 읽지 않았다. 읽더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쿤데라의 산문은 몇 권 되지 않지만, 나는 시간을 들여 조금씩 읽어나갔다.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소설 보다 산문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의 다정한 산문 (소설에 비하면)을 보면서 반하고 말았다. 문학이란 이렇게도 알아갈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쿤데라 소설이 어렵다면 산문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시간은 흘렀지만, 이제 정말 밀란 쿤데라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미루고 있다. 아직 나에겐 너무 먼 당신이다.
Milan Kundera
나에게 밀란 쿤데라란...
생존작가이다.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서 정말 살아있는 작가란 드물다. 그러니 어쩌면 그것은 특별히 내게 살아남은 작가처럼 느껴진다. 그는 1929년 4월 1일생이다. 90세에 가깝다. 체코슬로바키아 브륀 태생이다. 나는 그가 망명한 것으로 알고 있어서, 체코작가는 망명하는 것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후밀 흐라발이라는 작가를 밀란 쿤데라가 소개할 때 남겨진 작가의 마음은 이럴 수 있겠다는 사실을 조금 알았다. 망명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어떤 과정이 되었나를 생각했다.
체코가 소련군에 점령 당한 후 시민권을 박탈 당해 밀란 쿤데라 1975년 이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81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나는 로맹가리가 1980년 12월 2일 권총 자살한 것을 알고 있다. 로맹 가리는 죽기 전 유서를 남겼고, 사후 6개월 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의 소책자로 발간되었다. 여기서 로맹가리는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음을 밝혀 프랑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준다. 1981년 7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다. 나는 가끔 나와 이렇게 연관 짓곤 로맹 가리를 생각한다.
쿤데라는 1981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하며 그 당시의 로맹 가리를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유독 프랑스, 체코 문학에 관심이 많다. 설명하지 않는 그런 음표 같은 소설들이 참 좋다. 그런 소설이 좋다는 것을 알려준 작가가 바로 로맹 가리와 파스칼 키냐르이다.
Milan Kundera
체코슬로바키아, 밀란 쿤데라의 삶
쿤데라의 아버지 루드빅 쿤데라는 상당히 기품 있는 집안으로 그는 아버지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고, 후에 그 역시 음악학을 공부했다. (루드빅 쿤데라는체코의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작곡가 레오슈 야냐체크의 문하생) 그의 소설에 음악적 배경은 여기에 기인한듯하다.
1948년 브르노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프라하 카렐 대학교의 예술학부에서 문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두 학기 만에 프라하의 공연예술 아카데미의 영화학부로 옮겨 영화 기획과 희곡 창작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영화 아카데미 AMU에서 조교 활동도 하나 1950년 정치적 이유(반공산당 활동)로 학업을 중단 당한다.
그는 1952년 졸업 후 영화 아카데미에서 세계 문학을 가르치는 강사가 된다. 그는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세대다. 그 시대의 체코슬로바키아의 젊은 세대들은 공산당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는 반공산당 활동으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하는 사건으로 <농담>(1967년)에 메인 테마로 사용한다.
1956년 공산당에 재입당, 1970년 당에서 재추방당한다. 1968년 체코의 예술가이자 작가인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다. 프라하의 봄이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반이 간섭하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소련 측은 협상이 실패하자 장갑차와 탱크를 보내어 침공한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점령 상태가 된다.
Milan Kundera
밀란 쿤데라의 작품 활동
1968년 밀란 쿤데라는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그의 첫 번째 작품<농담>(1967)에서 사회주의 체제 풍자를 담겨 있어서다. 이 작품은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1989년까지 금서로 지정되었다. 당시 집필 활동이 금지된 그는 프랑스로 망명한다.1978년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에트 체제에 저항하고 있는 체코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84년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발표했다. 이 책은 개인의 운명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그리고 있다. 어떤 작품보다 세계주의적이며,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다. 1988년 미국 영화감독 필립 카프만이 영화화했다. 그리고 1990년 체코에서 재발간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 (소설)
농담 (1967) 우스꽝스러운 사랑들 (1969) 이별의 왈츠(1972) 생은 다른 곳에 (1969) 웃음과 망각에 관한 책 (197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불멸(1990) 느림 (1995) 정체성 (1998) 향수 (2000) 무의미의 축제 (2014)
쿤데라 정치적 작가? 반체제적 작가인가? 그는 순수 작가로 보아달라고 한다. 체코 태생의 쿤데라로서 그가 엮어낸 이야기 크게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그는 다시 돌아와 순수 작가의 면모를 보인다. 쿤데라의 스타일은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니체의 산문에 많은 영향을 받아 철학적 여담이 흐른다.
쿤데라는 소설적 영감은 조반니 보카치오나 라블레, 스터, 디디로, 무질, 곰브로비치, 브로흐, 카프카, 하이데거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얻었다. 그는 체코 전통 음악아나 바르톡, 야나체크와 같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쉰베르트의 무조성 개념도 도입했다.
그가 체코어, 프랑스어로 썼으며, 1985-1987년 사이 이전에 쓴 작품들은 프랑스어 번역을 수정했다. 프랑스어본을 권위를 가진 원본으로 취급한다. 국내 번역 작품들도 프랑스어본으로 번역하고 있다.
나에게는 지금 프란츠 카프카 <성>을 읽고서 다음엔 꼭 밀란 쿤데라일지도 모른다. 그러길 바랄 뿐이다. 여기에 다짐만 늘어나고 있다. 다짐에 다짐만 늘어갈 뿐! 쿤데라 소설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기대하는 것은 나의 작은 설렘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프란츠 카프카의 <성>은 모래성처럼 쌓고 허물고를 반복하고 있다. 뼈대라도 남길 바라며 잘 읽는 것을 넘어서서 그냥 덮고 잊을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대로 덮어버리기 싫은 책이기도 하다. 덮고 깨끗이 잊어버린 책들이 훨씬 많지만, 내가 이 책마저 그럴 필욘 없지 않은가.. 읽어보자 읽어보자 세뇌하고 있다.
나는 항상 다음다음도 만들어둔다. 쿤데라 소설을 덧없이 읽고 가볍게 넘기고 의미 없이 덮어버리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읽어봤으면 좋겠다. 눈으로만 읽어도 좋은가? 좋으면 대체 무엇이 좋은가? 좋은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다른 의미로 만족스럽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읽을까? 읽기도 전에 상상만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