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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ug 07. 2020

구토- 사르트르 '너 아닌 다른 누구라도'

'모든 것이 시작한 것은 그날, 그 시간이다.'


#1



나는 그 무엇을 보았고 그것이 나에게 혐오를 일으켰던 것이다.

나는 공포심, 또는 그와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던가.

그것만이라도 알았다면 벌써 많은 진보를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물체에 관한 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확실히 알고 싶은 점이다.


나는 자고 싶다.

나는 밀린 잠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변화한 것은 나라고 생각된다.


나는 생겨나려 하는 것, 나를 사로잡으로려는 것.....이 두렵다.

너무 늦기 전에 나는 나의 내부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을 똑똑히 알고 싶다.


나는 혼자서, 아주 혼자서 살고 있다.

절대로 아무에게나 말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나는 고독의 길을 너무 먼 데까지 와 버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고독의 한계>를 그어 놓을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불안하다.


이제는 늦었다.


이제는 다 끝났다.







#2



나는 밤이나, 낡은 헝겊이나 특히 종이 조각 등을 줍기 좋아한다.

그것을 줍고, 그것을 손에 쥐는 일은 기쁘다.


무겁고 사치스러운, 그러나 똥이 묻었을지도 모르는 종잇장들의 한 귀퉁이를 집어올릴 때

여름이나 초가을에는 햇볕에 익어 낙엽처럼 마르고 부석부석한, 마치 피크린산을 친 것처럼 누렇게 보이는 신문지 조각을

겨울에는 다른 종잇장들이 찌그러져서 짓밟혀, 더렵혀져

그것들이 흙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들은 몸부림을 치며 진흙에서 빠져나가지만 결국 얼마 못 가서 땅에 철썩 붙어 버린다.


그 모든 것을 손에 쥐는 게 즐겁다.


나는 허리를 굽혔다.

나는 내 손가락 아래에서 회색의 조그마한 공처럼 구를 그 부드럽고 산뜻한 반죽에 손을 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깐 몸을 굽히고 있었다.

<받아쓰기 - 흰 부엉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빈손으로 일어섰다.

나는 이미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짓을 할 수 없다.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마치 그것들이 살아 있는 짐승돌인 것처럼 그 물체들과 접촉을 갖는 게 나에게는 두렵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것은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것은 조약돌 탓이었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었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역증.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64년 수상 거부)<말Les mots, 1963년>
사르트르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인 말을 선보이며 등장했던 커플이다. 실존주의의 꽃을 피운 위대한 사상가,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기치로 내세웠던 실존주의 학자로서 사르트르는 수년 동안 가난한 노동자나 사회적 차별을 받는 약자의 편에 섰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 공산당의 정치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말>은 그의 사상적 회고록이자 에세이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라기보다 사상적 기로에서 자신의 신념을 구체화하고 세워가는 과정의 난해함과 쓰라림을 담은 책이다 : 출처 https://blog.naver.com/kennyjh/120092126474




#3



나는 실제로 무엇을 찾고 있을까?

내가 지금 매달려 있는 것은 책이다.

하루하루 나는 책을 쓸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는 우리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가 헛되이 가 버리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

아마도 날이 저물기 전에는 아무런 흡족한 일을 못할게다.

간밤에, 나는 짐승처럼 잠을 잤기 때문에 졸리지 않다.


내가 자기혐오에 떨어지려면 15분이면 충분하리라.


나는 친구가 없다.

마치 인간에게서 떠난 자연이라고나 할까.

이제 나는 일하기가 싫다.

밤을 기다리는 수밖에 아무 할 일이 없다.







#4



<구토>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구토>는 나의 내부에 있지 않다.

온갖 내 주위에서 그 <구토>를 느낀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음악은 벽에다 우리들의 비참한 시간을 짓누르고, 금속적인 투명한 빛으로 방안을 채웠다.

나는 음악 <속>에 있다.


나는 춤추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행복하다.

레코드판이 거꾸로 못 도는 것과 같다.

그 모든 것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갔었던가?


<구토>가 저기 노란 불빛 속에 남아 있다.

나는 행복하다.

이 추위는 그렇게도 순수하며, 이 어둠 또한 그렇게도 순수하다.


정적, 정적.


사라져 버린 수백 가지 사건 중에서 닳을까봐 조심스레 생각해 낸다.

그중의 하나를 건져낸다.

배경, 인물, 거동이 되살아난다.

감각의 실마리 밑에 하나의 말이 솟아 있는 것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영상을 제쳐놓고 자리잡으리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이내 멈추고는 재빨리 다른 생각을 한다.

헛수고다.


나는 나의 현재를 가지고 갖가지 추억을 만들어 낸다.

현재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다가 현재 속으로 저버린다.

과거와 합세하려 하나 허사다.

나는 현재에서 도피할 수가 없다.


때때로, 카페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 때,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모험은 책 속에 있다.

물론 책 속에 있는 것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책과 같은 방법으로써 가 아니다.

내가 특히 귀중하게 여기던 것이 바로 그 방법인 것이다.

우선 그 출발이 진짜 출발이라야만 했다.

그 무엇은 시작되지만 끝나기 마련이다.

모험은 연장되지는 않는다.

모험은 그 자체의 사멸로써만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 사멸을 향하여

나는 되돌아오지 않고 끌려간다.

나는 온 마음의 애착을 느낀다.


나는 소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은 흐르고 나는 그것을 붙잡지 않는다.

그것이 가 버리는 게 그저 흡족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그것>을 가져 보지 못할 것이다.

너 아닌 다른 누구라도





#5


When the low moon begin to beam

Every night I dream a little dream

달콤한 달빛이 비칠 때면

밤마다 나는 짧은 꿈을 꾼다.


회전하는 레코드는 존재한다.

그것을 듣는 나, 나는 존재한다.

가까우면서도 그렇게 먼, 그리고 젊고, 무자비하고, 고요한 그...

그 엄숙함이 있다.


화요일

아무 일도 없다. 존재했다.



모든 것이 시작한 것은 그날, 그 시간이다.
사르트르



구토 저자 장 폴 사르트르출판문예출판사발매1999.09.10.


이 작품의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부빌에 거주하며 3년째 '죽은 자'를 연구하는 서른 살 연금생활자이다. 그는 결국 언젠가는 자신을 버릴 도시의 깊은 우울함 속에 고립된 채 살아간다. 스쳐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의미 없는 대화, 그와 접촉하는 소수의 사람들, 부빌의 풍광 등이 인상파 화가의 붓끝인 양 이어지고, 결국 로캉탱은 새롭지만 아주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가슴에 감춘 채 부빌을 떠난다.




<마무리>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 행복이라고 말해야 하나 그는 회의적이다. 왜 그럴까. 처음엔 자신의 분신 같은 책들이 누군가에 찾아내어지는 빛나는 한 조각이 되지 못할 것이 못내 숨 막힐까. 아니면 흙에 파묻혀 흔적조차 남지 않아 비참할까 무엇이 문제일까를 생각하며 읽었다.


주인공 로캉탱의 일기다. 당연히 사르트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내면을 속속들이 밝히는 까발리는? 그런 책이라고 세뇌하며 나같은 독자가 한둘일까 아무튼 그래도 상관없는 나하나쯤 알아도 상관없는 '당신도 별반 다를 수 없을..' 그런 의미라서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글 쓰는 자의 두려움, 그가 가진 애착은 책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데 시작하지 않고, 그래서 끝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어진다. 자기 속에서 끝없이 연장되길 갈망하며 출발을 꿈꾸다 이내 깨어나 침묵한다. 그러면서 그려내고야 마는데... 자기 고뇌가 무슨 의미냐 되묻기도 한다.


존재를 부조리하다 느끼는 사르트르... 기이하다. 존재를 하여서 존재하는 가 보다 여기지 부정할 생각은 못 해본 나로서는 기이할 뿐이다. 다만 태어났지만 안 태어났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그런 무의미한 생각은 잠시 스친다. 모든 게 쏘쏘할 뿐이고, 큰 기쁨과 슬픈 한순간에 썰물처럼 사라질 뿐이고, 고통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으니... 남은 건 행복이 클까 고통이 클까 비교를 하는 건 어리석을 뿐... 사르트르 또한 자신이 어디에 애착을 가지며 그 속에 안착할 과거를 알고 있으니 그럼 되었지 싶었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칼처럼 생각했다.
이제 와서는 나는 우리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책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르트르




사르트르의 사고는 대상과 의식의 문제로 옮겨진다. 이웃을 위해 쓰는 작가 사르트르로... 경험할 수 있는 의식만을 말하는 자로 선다. 여기서 등장하는 독학자 누구인가? 수많은 독자가 독학자가 아니면 누굴까. 잠든 자도 흔들어 깨울 자들 그렇게 질문하고 다그친다.








사르트르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출생.

1929년(24세) 교사 자격 얻음.

1931년(26세) 르아브르고교 철학교수를 역임.

1936년(31세) 『이마지나시옹』 - 신철학백과에 발표.

1937년(32세) 단편『벽』 발표.

1938년(33세)『구토』 출간.

1940년(35세)『이마지네르-상상의 현상철학 심리』출간.

6월 21일 로렌느 지방의 파두에서 포로가 됨.

1941년(36세) 4월 1일 민간인을 가장하고 석방됨. 파스퇴르 고교 복직.

1943년(38세) 『파리떼』『존재와 현상존재학시론』『철나는 시절』『자유의 길』『유예』등 발표.

                  『자유의 길, 2부』『1막극, 닫힌문』출간.

1946년(41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3막극, 무덤 없는 죽음』『2막극, 공손한 창녀』

                   『유대인 문제 고찰』출간.

1947년(42세) 『보들레르 론』『내기는 이루어졌다』『시튜아시옹 I』

                   희곡집『파리떼』『닫힌문』『무덤 없는 죽음』『공손한 창녀』출간.

1948년(43세) 『톱니바퀴』『더러운 손』『시튜아시옹 II』출간.

1949년(44세) 『정치논쟁』『단장』『자유의 길, 3부』『시튜아시옹 III』CNFRKS

1951년(46세) 『3막 II장극, 악마의 신』출간.

1952년(47세) 『성 주네 론』출간.

1953년(48세) 『앙리 마르탱 사건 해설』출간.

1954년(49세) 『킨』출간

1958년(53세) 『3막극, 새로운 길』출간.

1960년(55세) 『아토나의 격리환자』『변증법적 이론에 대한 비평』출간

1963년(58세) 『시튜아시옹 IV』출간.

1964년(59세)『시튜아시옹 V』『말』출간.

1980년(70세) 사망,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힘.



P.S 여름방학을 맞아 읽으려고 펼쳐든 <구토>였습니다. 사실 진득하게 읽진 못했어요... 초반 읽고 휘리릭...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작은 책이었고, 읽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나버렸었는데.. 올여름이 돼서야 그 구토라는 제목이 정말 와닿아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습죠.. 모든 게 버겁다는 짓눌림에 구토가 일어서 사르트르가 말한 구토와는 다르겠지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철학교수여서 그런지 아주 심오한 글이었고, 잘못 이해하기도 했고, 해설을 읽고 제 안에 마무리 지었어요. 매달 한 권은 리뷰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여유가 없나 봅니다. ^^; 다음엔 사르트르의 수상 거부했다는 <말>을 꼭 읽어보고 싶네요. 작가의 처음과 끝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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