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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지자, 보나에게

그 시절 똑똑하고 든든한 그녀는, 지금 나의 뮤즈

by rohkong 노콩

그녀는 2명 선발하는 '브라질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준비해 지원했고, 운명처럼(?) 딱 2 명이 지원해 자연스럽게 최종 합격자가 된, 노력도 행운도 겸비한 '러키 걸'이었습니다. 여행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만 품고 떠난 저와 달리, 브라질어(포르투갈어)를 공부하며 브라질과 한국의 무역을 진지하게 꿈꾸는, 대책 있는 무역 꿈나무였습니다. 계획 없는 교환학생 동기이자 룸메이트였던 저 때문에 처음에는 오해와 어려움도 있었지만, 2달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제가 교환학생이 마칠 무렵엔 사랑이 넘치는 자매 같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교환학생 후에도 인턴으로 브라질을 찾을 만큼 브라질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서울살이 하는 그녀에게, 이 편지를 전합니다.




이 글은 편지 형식입니다.

10년 전, 함께 브라질 교환학생을 했던

그리고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여행 정보는 없지만 그때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어, 친구의 모국어인 영어로 함께 공유합니다. 번역은 ChatGPT로 진행하였으며, 이후 친구에게 검수받아 수정할 예정입니다.




oi, tudo bem, bona?

벌써 10년 차라는 것이 믿어지니? 우리가 브라질에서 생활한 지 말이야. 매년 우리는 브라질 다녀온 시간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벌써 벌써 벌써"를 이야기했지만, 10년은 정말 감회가 새롭다. 우리의 브라질 시간을 되새겨본다면.. 너무 기억이 많아, 뭐부터 하면 좋을까?


우선 너의 판단력 덕분에 우리가 파울리스타(한국의 강남대로) 거리에 살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면서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 내가 고르고 이야기한 수많은 말도 안 되는 위험한 집들을 뒤로한 채, 네가 고른 아담하지만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큰 대로변에 살게 된 건 나의 브라질 삶을 안정적이고 여유롭게 만들어줬던 거 같아. 진짜 그렇게 큰길에 살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재미있고 신기해.

우리의 방은 아직도 눈감으면... 아니, 눈떠도 생생해. 거실을 지나 우리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고, 왼쪽엔 책상이 놓여 있어서 우리 나란히 앉아 올리브유, 간장, 계란밥을 종종 먹고(참기름은 못 구함), 옷장을 반으로 나눠서 왼쪽은 너의 짐, 오른쪽은 나의 짐을 넣고 창문 옆 2층 침대에서 살았잖아. 그래 맞아. 2층 침대!

6개월이 넘게 살면서 너는 한결같이 위에서, 나는 아래에서 잤는데,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어른이 돼서야 문득 미안했던 나는 어린 사람이었어. 덕분에 1층에서 편안하게 살았어 고마워, 보나야


글을 쓰려고 보니 고마운 거 투성이야. 브라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교차가 더 심해서, 비염이 있던 나는 참 많이 골골댔는데 그것도 초반에 네가 준 약 덕분에 살았다. 그때의 나는 지나고 보면 참 대책 없고, 그냥 용감했던 거 같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후회는 없지만, 네가 고생을 많았겠구나 싶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 (뭔가 너무 감성적으로 가고 있어)



지금 이 편지를 쓰는 것도 다 너와 함께 만들었던 우리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잖아. 10명의 친구는 나의 친구이자, 다 너의 친구야. 브라질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렇지? 왜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지? 어떤 날은 살짝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부지런히 서로를 가스라이팅하며 친구 사귀기를 했어. 누가 누가 페북 친구(브라질의 페북 메시지 = 카카오톡) 많이 사귀는 가 하는 거처럼 말이야.

다행히도 개방적인 브라질 사람들의 성격 덕분에 우리의 프로젝트가 손쉽게 이행되었겠지만 우리는 얼추 가늠 잡아 각각 100명쯤은 친구를 사귀었던 거 같아 1~2달 사이에 말이야. 그렇게 사귄 친구들과 함께 브라질의 '뽀뽀뽀' 전시를 보러 간 거 기억하니? 20살 브라질 소녀들과 함께 살짝... 아니 솔직히 이해는 안 가는 내용이지만, 그런 경험 자체가 신기했어.

그리고 또... 너는 길 가다가 혼자 그림 그리고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어서 나를 소개해주고, 지하철에서도 친구 사귀고, 친구의 가족들도 소개받고, 세상에 그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밤마다 곯아떨어졌던 이유를 알겠군!


상파울루 대학교(USP)는 정말 좋은 대학교였잖아(남미 1위 대학). 우리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 USP 교환학생이라면 정말 좋은 학교에 온 거라고 이야기해 줬잖아. 내가 브라질 수능치고 들어간 것도 아닌데 프라이드가 생기더라니깐, 그래서일까, 학생 신분일 때 학교에서의 혜택을 다 체험해 보고자 마음먹고,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학교 식당도 종류별로 다 가고, 파티도 가고, 과도 세네 개 돌아다니고(경영, 건축, 미술, 언어과) 정말 부지런했어. 그 더운 햇살아래 발이 땅에 붙어 있었나 싶을 만큼 여기저기 열심히 다녔어.

요가는 아직도 생생해, 진짜 100명쯤 들어가는 커다란 체육관에서 요가했잖아. 조금 할아버지(?) 요가 선생님이 손가락만 하게 저~ 멀리 있는데 모두 조용히, 집중해서 요가를 잘 따라 하던 그 분위기, 그 아침 시간에! 8시였나? 7시였으면 못 갔겠지?ㅋㅋ 그래도 매번 늦었잖아ㅋ

브라질은 더운 나라라 수업도 8시부터 시작해서 좀 놀랬어. 대학생이면 9시, 10시 늘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말이야.


학교가 엄청 크고(한국의 작은 구 만함), 천연기념물 같은 나무가 학교 사방에 깔려 있고, 학교버스를 타고 15분은 가야 우리 과 건물 나왔잖아. 그리고... FEA (건축과) 옆 다른 과 건물 자판기 커피가 맛있어서 가서 먹고 (왜 그랬나 몰라)

맞아 맞아, 학식에선 고기를 그렇게 사랑하는 브라질에서 채식 메뉴가 따로 있어서 정말 신기했어. 거의 모든 메뉴가 다 맛있었던 거 같은데 정식 슈하스코를 나는 안 먹어봐서 조금 아쉽다. 이 시리즈 다 쓰고 나서 서울에서 같이 먹자. 맛집은 네가 찾아죠.


브라질에서도 행복하고 특별했지만, 여름(1월)에 떠난 우리의 남미여행도 보통이 아니었어.

우유니 보러 가자로 시작해서 "이렇게 된 거 마추픽추까지 볼까?" 하고 버스 타고 쭉쭉 올라갔잖아 이까지 왔으니 가보자 하면서 용감하게 여행했던 날.

칠레에 비행기 타고 도착해서 버스 타고 별 그대 도민준이 사랑한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도 가고, 거기서 버스 타고 더 올라가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도 보고, 우리 여권에 이나라 저나라 도장 빵빵 찍어가면서 말이야.

그리고 더 올라가자! 가보자! 하면서 볼리비아에서 페루 마추픽추까지 올라갔지. 진짜 겁 없고 행복했어. 5시간 8시간 버스 타고 가도 전부 신기하고 재미있었어. 다시 생각해도 마추픽추 간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 마추픽추 오르기 위해 아침 6시? 일어나 산을 향해 걸어갈 때 밤이 너무 어두워서 '호랑이가 나온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싶을 만큼 세상이 어둡고 하늘만 밝은 그날이 아직도 기억나.

우리는 시간보다 돈이 없던, 아니 시간은 무한 쓸 수 있지만 돈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5,000원 정도 가격하는 버스 안 타고 1시간 반을 등산했잖아, 정말 힘들었어. 그래 놓고 내려와서 도시로 오자마자 스타벅스 갔던 날 기억나. "우린 도시여자야~ "라면서 그 비싼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말이야.


그리고 마추픽추에서 상파울루 가야 하는 데,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갔다가 상파울루 가려고.... 정말 충격적인 버스를 탔지. 어려서 가능하지 않을까? 31시간 버스?? 진짜 너무 재미있다.( 버스 직선거리 2,400km, 육로 거리 3,000km 이상 / 항공 7~10시간, 경유포함) 어른인 지금은 절대 못 타겠지.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그 버스 안에서 미쳐버릴까 봐. 우리 다 같이 페루의 알파카 털실을 샀잖아. 그것도 엄청 좋은 털실집 찾아서 아기 알파카 털실! 그 털실로 뜨개질하면서 내려왔던 거 생각나. (나는 아직 작은 머플러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사실)


진짜 진짜 힘들게 도착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진짜 천국처럼 좋았어. 너무 힘들게 와서도 한 몫하겠지만 거리도, 사람도, 공기도 다~ 진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길에다 돈을 흘린 거만 빼면 ㅋㅋㅋㅋㅋ (50만 원 정도) 셀프로 한 일이라 정말 다시 생각해도 할 말이 없어. 그래도 하루 만에 훌훌 털어버리고 탱고 보는 곳도 가고, 서점도 가고, 세상에서 가장 긴 시장도 가고, LIFE 잡지도 한 그 사고! 재미있었던 일들이 정말 많아서 정말 행복해. 그 모든 순간이 지금까지도 내 안에 따듯하게 남아 있어. 그 시절의 우리를 꺼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보나야


짧은 기간 엄청나게 많은 추억을 듬뿍듬뿍 함께 쌓고, 그 추억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누며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는 보나야, 10년 동안 덕분에 참 많이 웃고, 많이 의지했어, 앞으로의 시간도 함께하자, 잘 부탁해. 갑자기 봇물처럼 터진 이야기보따리에 신이 나 한참을 웃으면서 편지를 쓰고 나니 톡을 해야겠다. 서울도 봄이니? 자... 니?


건강하고 우리 그때처럼 쭈욱 행복하자, 안녕

내 친구, 내 동생 우리 보나



2025.03.25

부산 사는 언니, 노현지보냄




000048.JPG 나랑 보나랑 유니
000058.JPG 나랑 보나랑 유니
20141206_180248.jpg 벌스데이 걸 앤 보이
000007.JPG 일기 쓰는 보나
우유니에서의 우리
20150128_200138.jpg 페루 길거리 소녀
20150130_083437.jpg 마추픽추 그녀
20150130_090928.jpg 나와 보나, 그리고 여행을 함께 한 소녀들
20150225_202654.jpg 한국 가는 공항에 배웅 온 주주와 보나
20141202_15103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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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과 요가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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