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멈춘 세상 속 멈추지 않은 일상

by 흔한여신

세상이 자꾸 멈춘다.


마스크 안에 갇혀 지낸 삶이 벌써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싸운 기록이 전무한 채로 맞닥뜨린 새로운 바이러스. 현 인류에게 낯선 새로운 전염병은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며 사람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다. 이전과 다른 생활상이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되면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회복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각 사회마다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 많다. 고통의 크기나 모양은 저마다 다르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내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나만 힘들다고 보챌 수 없는 노릇이다. 지인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커피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앗아가 버린 질병. 이미 많은 걸 인내하고 양보하고 감수하고 있지만 각자의 답답한 마음이 위로받을 길이 없어 참담하다.


나 역시 주말 내내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연일 뉴스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위기가 잘 극복되는가 하면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는 일상의 반복. 지난 두어달 간, 8월 광화문 집회 이후로 연돼 집단감염을 일으키며 창궐했던 바이러스가 잠잠해진 틈을 타 사람들은 다시 야외활동에 나섰다. 실외 활동량이 더 줄어드는 겨울이 오기 전 가을 햇살을 만끽하고자 곱게 물든 단풍을 한껏 눈에 담아보고자 그리고 갇혀 지낸 답답함을 풀고자 했던 것일 테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바이러스는 다시금 사람들의 손발을 묵어 두었고 때맞춰 찬바람과 함께 겨울이 찾아왔다.


예정된 스케줄을 미루는 게 고민이 됐지만 괜한 행동을 했다간 사회적 지탄을 받기 쉽겠다 싶어 모든 일정을 연기해 두었다. 대신 내 방 침대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나는 온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5.8인치 속 세상 안에 갇혀 지냈다. 외부에서 어떤 중요한 의사결정이 내려지든 누군가가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든, 쉽게 와닿지 않는 거리에 있는 나는 자극에 무뎌졌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듯 나 또한 우울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짜피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일이라면 관심 밖에 두고 나는 그저 즐거우면 그만이다는 생각에 잠식되어 있었다.



IMG_1669.jpg 삶은 멈출 수 없는 여정, photo by 흔한여신


무얼 하고 있든 그게 아니든 간에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다. 누군가는 그 갇혀 있는 동안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고 미뤄둔 일을 시작했지만 나는 속절없이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세상이 뿌옇게 변해버린 탓인지 내 안의 어두움과 음울함도 그 깊이를 더 해가고 있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 사람들은 돈의 향방을 좇았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얼굴들은 더 이상 세상 사는 이야기, 자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데만 열을 올리지 않았다. 하나같이 주식, 투자와 같은 재테크 이야기 뿐.


그런데 그마저도 수익이 난다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다. 뉴스에서도 코로나 감염 상황에 대한 중계와 더불어 ‘동학개미’로 지칭되는 신흥 투자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뉴스로 다뤘을 정도다. 성장이 멈춘 시대에 갖가지 경제와 투자 이론은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분명 삶에서 중요한 이야기인데도 왠지 모르게 나는 자꾸 마음이 헛헛해졌다. 스스로 신분상승을 위한 기회의 사다리를 어떻게든 만들어보려는 그 무수한 노력들과 더 이상 개인에게 성장과 안전의 울타리를 제공할 수 없는 사회가 안타깝다 느껴졌다.


"Life goes on"


그렇게 팍팍한 현실에 치여 마음이 고단한 순간 나는 나만의 유토피아를 떠올린다. 꼭 코로나가 사라진 세상이라거나 내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경제적 풍요로움을 꿈 꾼다기 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웃음과 행복을 잃지 않은 그런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남들과 똑같은 목표를 좇느라 아등바등하다가 일과 사람에 지쳐 에너지가 닳아 버린 현실의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차가운 바람에 고요히 눈을 감고 저 멀리 어딘가 울창한 침엽수림 안에 오롯이 따뜻한 불빛을 뿜어내는 작은 오두막. 제 아무리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친다 한들 그 안에서만큼은 온기와 사랑을 맛 볼 수 있을 곳. 일시정지된 일상이 앗아간 자유를 그리워하며, 마음을 편히 뉘일 만한 고요 속에서 나는 오늘의 불안을 달래려 한다.


질병은 우리 사이의 거리와 자유를 앗아갔지만 삶의 여정은 지속된다. 평범한 일상이 멈추었다고들 하지만 삶에서 ‘일시정지’는 있어도 ‘정지’는 없다. 정지된 삶이란 이미 숨이 다한 사람의 모습이다. 멈출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불안함이 어깨를 짓누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기도 하지만 삶은 지속된다. 그리고 끝내 다음 걸음을 옮겨야만 이 짊어진 짐을 어찌해 볼 수 있다. 멈춰버린 세상 속 수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정해져 있지 않아 두렵기도 설레기도 한 미래엔 우리가 나아갈 다음이 있다. 빠르게 흘려 보내느라 잊고 지낸 것들을 돌아볼 성찰의 시기이자 내일을 위한 도약의 시기로 여긴다면 여전히 희망은 건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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