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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07. 2020

취준생 딸과 아들을 둔 친구들에게

어느 비 내리는 9월의 오후 무렵이었지.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때가. 친구는 이모 고모 안 따지고 다짜고짜 물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톤은 경쾌했지만 무엇인가 목에 걸린 듯했다. 코로나 때문에 크고 작은 모임조차도 꺼려하던 날들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오래간만에 걸려온 친구의 저녁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내심 반가웠다.


"그러자고, 마침 목소리가 그리웠고 목이 마르던 참인데....,... 음... 그래, 알지.... 7시에... 거기서 보자고...."


김치와 삼겹살을 올린 불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들이 최고의 궁합인 것을 먹어본 이들은 안다. 김치도 잘 익은 배추김치와 곰삭은 갓김치를 함께 곁들이면 그 맛은 이상의 찬사가 필요 없다. 홍어 삼합도 그 맛이 으뜸이지만 삼겹살에 익힌 김치와 두부나 양파 등 야채를 얹은 삼합의 맛도 그에 버금간다.


입에 감기는 음식에 취하면 옆에 있는 술잔은 함께 취기가 오른다. 뜨거운 불판에 얼굴이 붉어지고 몇 잔을 든 술잔에 더욱 수줍어진다. 시절이 하 수상해서 그런지 유명한 맛집도 그리 북적거리지도 않았고, 그나마 자리 잡은 손님들조차 소란스럽지 않게 서로가 조심스러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러온 새로운 풍속도였다.


회사 내의 위태위태한 분위기와 세상사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친구가 뜬금없이 던지는 말.

"큰딸은 회사 잘 다니고 있지?"


우리 집 큰딸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친구의 의중을 아는 터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거 같더라고. 불평불만은 많아도 스스로 밥벌이를 해서 좋은 건지... 아무튼 출퇴근은 잘하고 있더라고..."


우리 큰딸은 중3 때 자신의 선택에 의해 대학 진학을 미뤄두고 당당히 조기 취업의 길을 택했다. 그 당시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딸의 선택이 신의 한 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나기 전에 정유사인 대기업에 취업을 했으니까...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 집에도 아이들이 줄줄이 고난의 대열에 서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친구의 딸은 대학 졸업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취준생이다. 처음에는 본인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했다가 그게 여의치 않았던지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친구의  딸은 대학 진학 때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 친구의 자랑거리였다. 늘 공부 성적은 좋았었고 반장 회장을 도맡아 하던 그런 아이였다. 그러던 딸이 대학 진학 후에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아쉬움을 남겨서 친구에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친구의 말을 듣자 하니. 올해는 꼭 합격하겠노라고 열심히 던 딸이 요새 의기소침해졌다는 얘기다. 노량진 공무원 시험 학원과 인강을 번갈아 듣다가 코로나 사태 이후로 집에서 인강만 듣고 공부하던 딸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국가공무원 시험 일정 연기 탓도 있거니와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엄마와의 사이가 틀어진 것이었다. 특별히 엄마랑 사이가 나빠질 이유가 없었지만,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긴장감과 사소한 불평불만이 상승작용을 해서 폭발했을 거라는 분석이었다. 뾰족한 답이 없는 얘기라 그냥 묵묵히 듣고 고개만 끄덕였다. 친구 또한 속에 있는 얘깃거리를 털어놓아 무언가 풀리는지 말수가 많아졌다. 그 와중에 친구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나중에 합류한 친구에게는 역시나 대학 졸업반인 아들이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통신기업 관련 준비를 하다가 올해 들어 기업 상반기 공채가 사라지는 바람에 방황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하반기에도 공채가 재개된다는 소식도 없어서 답답해한다는 소식이었다. 취업시장에서 갑자기 전공이나 대상을 바꾸는 것은 위험하고도 힘든 일이다. 그 집 둘째는 아예 취업이 잘되는 간호학과를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취업을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대학의 간호학과로 진학했다. 수도권에 간호학과가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에는 성적이 역부족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의 아들 딸들 모두에게 코로나 사태는 어려움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 부모들에게도 같은 질량의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나 성장률에 관한 전망은 어둡다. 이런 상황은 대학을 졸업하고 새내기 직장인으로 새 출발을 해야 할 이들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부모들의 얼굴에도 밥상 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이 나아지면 아들 딸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부모의 근심도 덜어질 것이다. 요즘처럼 경쟁이 심화되고 기회가 적은 때는 어떤 말로도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힘든 시기를 참고 기다리라"는 상투적인 말은 오히려 안 하나니만 못 한 조언이 될 수 있다. 그냥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움츠렸다가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통의 시대를 지나는 딸과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와 그 부모를 바라보는 친구들 모두.


다른 친구가 합류하고 삼겹살 불판을 다시 갈고, 고기와 김치도 추가되었다. 화젯거리는 가족 이야기에서 정치 이야기로 갔다가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그러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아이들이 가야 할 미래를 걱정하며 낯선 술병을 추가했다. 뱃살 걱정은 먼 나라의 남 얘기였다. 걱정과 고민거리를 불판에 굽고 상추쌈에 싸서 먹다 보니 빈 술잔만 남았다.


얘기 주제는 달이 지구를 돌듯이 계속 돌아 웃음과 쓴웃음과 허탈함을 주고 있었다. 맑은 달밤의 밤하늘이 짙어질수록 아빠들의 말수는 많아지고 얼굴 혈색은 더 좋아졌다. 그래도 친구들 간에 남에게 하기 힘든 가정사나 아이들 얘기를 하다 보니 속이 후련해졌을까. 가뜩이나 움츠려 들었던 상황이라 그런지 모처럼 긴장을 풀고 웃음꽃을 피웠다. 이래서 친구들이 좋은가보다.


건강문제와 더불어 취준생 아이들을 둔 친구들에게 훈수 아닌 훈수를 뒀다.(무엇보다 훈수 두기는 쉬우니까...)


"인생에 묘수란 없다. 또한 지름길도 없다."

"제대로 둔 정석이 어쩌다 타이밍이 좋아 묘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정석대로 살다 보면 기회가 오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는 거다."

"아! 딸이 행정법 점수가 안 나와서 고민이라 그랬지. 그거는 판례 공부를 좀 더 정확히 하고 반복하면 해결될 거야."


그렇다. 세상이 묘수를 원할 때도 나는 정석을 두는 게 옳지 않을까.... 그러니 아들 딸들이여 부디 너무 서두르지 말자.

곧 그대들의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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