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성파파 Oct 16. 2020

아이의 가출 충동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

우리의 영혼을 빛나게 하는 것들은 모두 십 대 때 있었다. 인생에 대한 설렘, 다양한 꿈에 대한 기대, 사랑을 포함한 감정들의 향연... 반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가장 큰 어둠의 이면을 숨기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삶의 어둠에 관한 진실은 십 대 때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지만 성인이 된 다음에 콤플렉스나 트라우마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


십 대들에게는 몇 개의 불명예스러운 훈장이 있다. 중2병과 고3병, 가출 충동 등이다. 물론 조금 더 들어가면 자살충동이란 괴물도 숨어있다. 한때 십 대 청소년이었던 성인들에게도 이 훈장이 여러 개 수여된 바 있다. 본인들은 기억하기 싫고 거부하겠지만.


감수성 예민한 10대의 감정과 행동은 심리학적 분석을 거부한다. 기준 특정이 어렵고 분류 불가능한 각인각색의 유형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 교단의 선생님들 마저도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십 대와의 전투에서.


가출 충동의 이유는 충동의 수만큼 다양하다. 가정의 결손 문제, 부모와의 불화, 아이의 충동적 성향, 학교나 교우관계의 불만 등이 주된 이유들이다. 아이들이 가출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부모와의 불화가 아닐까. 부모 입장에서는 일부 나쁜(?) 친구의 유혹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정 내 불화가 먼저 존재하고 그런 요인들은 촉진제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청소년기의 가출에 관한 여러 사회학적 연구나 분석이 있지만, 막상 내 아이가 가출의 주인공이 되고 나면 그저 먼 나라의 이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특히 덜 충동적으로 살아왔던 부모들에게 아이의 이런 행동은 분노와 멘붕을 불러온다.


"내가 잘못해준 게 뭐 있는데" 하면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출 충동이 든다고 해서, 가출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든지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삶의 디테일 측면에서는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이 그러한 행동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십 대 때 그런 류의 생각을 해보거나 시도해본 부모들도 지금은 번듯하게 잘살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도 아니다.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부모는 위성처럼 아이의 주변을 떠돈다. 심지어는 헬리콥터처럼 맴돌기도 하고, 캥거루의 행동양태를 닮기도 한다.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부모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결과가 빚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부모의 지극정성이 있을지라도 충동적으로 벌어지는 아이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대부분은 "만약... ㅇ ㅇ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사후 결과론적 분석만이 남는다.


큰딸이 중학생일 때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떤 이유 든 간에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를"

그때 큰딸의 대답은 명쾌했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런 친구들이 많이 있기는 한데, 우리 엄마 아빠는 아직 견딜만하다"라고 . 


가장 예민한 중2인 아들에게도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친구들하고 가출이나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해본 적 있느냐고." 아들은 해맑게 웃는다. "나가면 고생인데 뭐할라고 그러냐고... 집에 있으면 최소한 굶거나 잠자리가 불편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텐데... " 요새 우리 집 아들은 학원에 가거나 친구들과 소소한 운동 하는 일 빼고는 집을 나가지 않는다. 제발 나가서 더 뛰고 열정을 발산해야 덜 까칠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안타까운 해프닝이다.


지금의 십 대는 부모들이 십 대일 때보다는 훨씬 마음속 내홍이 크다. 사회경제적 배경은 더 풍족함에도 과도한 경쟁문화나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부모세대보다는 몇 배 더하기 때문이다. 요새 아이들은 접하는 수많은 정보로 인해 현 상태에서 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를 미래로부터 가져오기도 한다.


부모들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의 마음속 상태를 알 수 없다는 거다. 아이들이 대화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불편을 감춰버리면 부모가 관심법을 연마하거나 신이 아닌 이상 부정적인 징후를 알 수는 없다. 평소에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집에서도 부모들에게 마음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들이 드물다.


또한, 어떤 충동이나 행위를 예방하거나 그로 인해 면역력이 키워지기 어렵다는 거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충동적 성향이나 누적된 불만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상황이더라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들이 적기 때문이다. 가출할 때 "아빠, 나 집 나가요" 하는 아이들도 없고, "내가 지금 그런 충동이 드네요. 엄마"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아이들도 없다.




결국 아이들의 태도나 생각이 바뀌기보다는 부모 입장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봐야 한다. 부모라면 누구든지 불러일으키는 오류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사실은 스스로 알기 어렵다는 함정이...)

애정 어린 조언과 관심으로 포장된 쓸데없는 간섭을 하고 있는지.
대화를 시도하고 질문하는 것이 일방통행이  아닌지.
아이의 자존감이나 정체성을 무시하고 있는지.
옆집 아이와 무심결에 비교하고 있는지.
혹여나 공부나 성적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지.
아이의 대화 요청을 거부하고 있는지.
정당한 훈계를 벗어나 폭력에 이르고 있는지.


부모들이 쉽게 할 수 있거나 개선 가능한 행동 유형들도 있다.(쉬워 보이지만 실천은 성인의 경지를 요한다는 함정이...)

소통의 방법을 개선하기: 아이의 말 먼저 들어주기, 감정적 대응 피하기, 문제의 본질만 얘기하기

아이와 입장 바꿔보기: 부모의 입장과 아이의 입장을 서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서로의 입장이 다름을 인정하기, 스스로 십 대가 되어보기  

부모의 마음 전달하기: 부모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살아가는 어려움과 고통을 말하기, 끊임없는 애정과 신뢰가 있음을 전달하기


적절한 조언과 칭찬은 고래도 아이들도 부모들도 춤추게 한다.




여행이 의미 있는 이유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돌아올 곳 없는 여행은 그냥 타향살이일 뿐이다. 가출도 마찬가지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전제가 깔린 개념이긴 한데... 여행보다 훨씬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물론 가출(충동)을 통해 더 성숙해지거나 어른스러워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일뿐이다.


이 순간 가출 충동을 느끼는 아이들한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애들아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때로는 부모에게 아량을 베풀어라. 알고 보면 부모란 존재들도 불쌍하다. 밖에서 깨지고 안에서 치이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너희들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으로 부모들의 굳어진 감성을 깨워달라. 부모들에게 세상에는 공부와 대학 진학 말고도 하고픈 것들이 많다는 것도 알려줘라. 자존감이 상하기 전에 부모에게 마음의 상태를 전달해라. 하지만 최대한 완곡하게..."


한 가지 더. 가출 충동은 사실 너희들의 전유물이 아니란다. 예나 지금이나 너희들과 살다 보면 부모들도 속 터져서 집 나가고픈 충동이 수시로 든단다. 심지어는 가출을 넘어 출가의 욕망이 싹트는 부모들도 있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진심으로...


끊임없이 중2 아들과 아등바등 갈등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도 아들의 진정한 속내를 알 수 없다. 아들의 마음속에 어떤 충동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아빠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사실이다.


 




이전 13화 아이들은 믿었던 도끼일 수도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