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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Nov 18. 2020

찌개와 국 사이에서 이혼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어떤 후배네의 저녁 풍경이다.


넓은 식탁 위에 반찬이 가운데 삼팔선을 경계로 두 종류로 나뉘어있다. 한쪽은 후배가 먹을 반찬, 다른 한쪽은 후배의 아내가 먹을 반찬. 이들은 전형적인 전라도 경상도 남녀의 만남이다. 결혼한 지 한참 되었지만 서로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을 자신의 앞에만 내놓고 먹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초부터 반찬 때문에 극한의 갈등을 겪었던 부부. 서로의 입맛이 다른 까닭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인데...


먹을 것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생활양식이나 정치적 코드 등 서로 다른 게 너무 많았다. 이들 밥상 위의 묘한 밸런스는 최소한의 갈등이나 부부싸움을 피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제삼자 입장에서는 그 집에서의 식사 후 설거지가 걱정된다. 설마 사이좋게 나눠서 하겠지라고 막연하게나마...(이 후배네 집은 다음 친구네 집에 비하면 비교적 현명할 수도 있겠다.)


친구 한 명은 늘 불평하기를.(많은 남자들의 얘기일 수도 있다.)


자신의 아내에게 "당신은 찌개와 국의 철학적인 경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이 끓인 찌개는 찌개가 아니고, 국은 국이 아니다. 정체성이 분명치 않은 이 국적불명의 음식 이름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아내로부터 즉시 돌아오는 말... "아니 무슨 배부른 소리를. 찌개는 국물이 적은 국이요. 국은 건더기가 적은 찌개다. 그리고 국적불명이 아니라 엄연히 토종 한국인이 만든 우리의 음식이라는 걸 알랑가 모르겠네.(갑자기 성철스님이 빙의됐나... 틀린 말은 아니어서 마땅히 대꾸할 게 없다고 한다.) 그러니 당신이 여 먹을 거 아니면 조용히 드시기나 하시라. 안 그럼, 숟가락 놓으시던지."


이러한 답도 없는 논쟁을 결혼초부터 이십여 년 넘게 해왔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문제겠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누군가에겐 사생결단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오죽하면 밥상 위에서 결별을 생각했을까? 국과 찌개에 대한 친구의 기준과 그 아내의 기준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친구네 집 밥상 위에서만 그러할까?


보편적인 국과 찌개의 기준은 뭘까?

<찌개>는 뚝배기나 작은 냄비에 국물을 바특하게 잡아 고기ㆍ채소ㆍ두부 따위를 넣고, 간장ㆍ된장ㆍ고추장ㆍ젓국 따위를 쳐서 갖은 양념을 하여 끓인 반찬을 말한다.

<국>은 고기,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를 통해서 본 양자의 차이는 국물의 많고 적음의 차이 정도다. 찌개의 <바특하게>는 "국물이 조금 적어 묽지 아니하다"의 의미로 국이 말하는 "물을 많이 붓고"와 차이가 있다. 양자의 구분이 문제인 건지 먹는 이들의 식성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국과 찌개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로 보인다.



국과 찌개에 관한 사전적 구분만 있을 뿐이고, 현실 속 밥상 위에서 분명한 기준은 없다. 누군가는 찌개에 밥을 말아먹을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국에서 건더기만을 먹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밥을 말아먹을 수 있는지 여부가 양자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안된다.


만약 부부가 서로에게 불평불만이 없다면... 국과 찌개의 경계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웃으면서 국을 찌개처럼 먹을 수도, 찌개를 국처럼 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싱거우면 간을 더하고 짜면 물을 더하면 되는 거다. 결국에는 찌개나 국은 죄가 없고, 그 경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선 이전에 다른 문제들로 인한 갈등의 씨앗들이 싹을 틔웠을 것이다.


부부관계는 서로에게 정을 쌓아가고 모르는 장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 주례사 같은 얘기는 신기루와 같다. 생활 속에서는 상대방의 장점보다 허물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쉽다. 미운 정도 애정이라며 변명해보지만. 미운 것은 그냥 미운 것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처럼,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죽어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부부관계에서 그렇다.


연애시절 알콩달콩했던 달콤한 사이도 결혼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보이지 않던 실금이 커다란 갈등을 일으킨다. 부부가 연애시절 알지 못했던 상대방의 사람 됨됨이에 실망하는 경우도 그렇다. 연애할 때는 몰랐던 단점과 흠이 마음이 멀어지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여러 이유 때문에 부부관계는 달달함보다는 삭막함에 가까워진다.


부부관계에 관해서도 <아름다운 이상론>을 말하기는 쉽지만, 가정 내에서의 그 적용과 실천은 어렵다. 말로는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도 있지만, 현실은 모래성 하나 세우기도 어려운 것이 우리네 사정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사랑과 속정의 유효기간이 없다고 우긴 들 관계 개선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다.


역시나 입맛이 까칠한 친구가 고민하는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


"친구여, 국과 찌개의 학문적인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물 양의 차이에 불과한데. 국과 찌개의 문제나 부부간의 생각의 차이(혹은 다름)는... 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누구의 말과 기준이 옳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관점(혹은 행동)을 먼저 바꿔 봄이 어떤가. 어차피 우리 자신을 바꾸기도 어렵고, 나아가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우리가 너무 사소한 것에 목매달고 사는 것인 아닌지 고민해보시게. 머시 중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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