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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원실에서
19화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by
지성파파
Mar 23. 2020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들판에 견디기 힘든 겨울이 왔을 때 흙속 깊은 곳에 뿌리로 남아 숨죽여 봄을 기다렸다.
겨우내 부둥켜안고 몇 줌 안 되는 쌀보리와 고구마를 나눠먹으며 매화와 산수유가 피어나기를 바랐다.
무쇠솥에 밥을 짓고, 갓 돋아난 냉이와 해묵은 된장으로 국을 끓여 먹으며, 다시 올 봄날의 햇살을 얘기했다.
전령이 봄을 알릴 때 우리는 들판에 터지는 꽃망울을 따라 활짝 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왔었다.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독재자의
서슬도 군부정권의 총칼도 우리 속에 숨은 의지와 결기를 죽이지 못했다.
지독한 과거의 망령이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으려 할 때, 우리는 결연히 뭉쳐
광화문
에서 촛불을 들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속에서 생명이
꺼져 갔을 때, 우리 모두는 함께 울며 죽어갔다.
사회적 고통과
공동체의 슬픔을 함께 겪으며 고난의 시절을 같이 지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왔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듯 푸르다.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새로운 역병이 인간의 경계를 침범했을 때, 우리는
혹독했던 겨울과 시련의 세대를 기억했다.
앞서 지나간 그 어떤 역경도 우리의 존엄과 인간됨을 훼손시키지 못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렸다.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을 존중하고
,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으며,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가
경험한 인간승리의 진실을 믿고, 코벤져스의 헌신에 감사하며, 다시 올 소소한 일상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우리 밖의 불신과 우리 안의 공포를 풀뿌리 같은 연대의 힘으로 이겨나갈 것이다.
절망의 바이러스를 몇 장 안 되는
마스크와 공생 공존의 의지로 이겨나갈 것이다.
불행의 씨앗이 우리 속에 살아남지 않도록 철저한 방역과 면역체계를 갖춰나갈 것이다.
재난 속에서도 인간의 품격이 빛날 수 있도록 우리와 이웃들의 일상을 보듬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나갈 것이다.
반드시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우리는 일상속으로 나아갈 것이다.
keyword
겨울
일상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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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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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저자
네 아이의 아빠로서 공무원교육원 교수를 지나, 현재는 다시 일선으로 복귀하여 밥벌이중입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와 살아가야할 세상, 부모들의 삶을 늘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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