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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10. 2019

포스트잇에서 딸의 마음을 보다

“나는 엄마의 희망, 아빠의 자랑”    

 

이 문장은 한때 중학생이었던 큰딸의 책상 위에 붙여진 것이다. 그것도 사춘기 무렵에. 노란 포스트잇에  테이프로 견고하게 붙여진 채로.


그 어떤 경구보다 더 신선했고 충격적이었다. 까칠해진 중학생의 머릿속에도 부모에 대한 자신의 의미를 그렇게 형상화했던 것이다. 딸은 겉으로는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한 듯했지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저렇게 마음속에 책상 위에 감춰두고 있었다.


그날 밤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의 눈에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커다란 파도로 밀려왔던 까닭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침묵이나 무언의 행위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작은 포스트잇에서 발견했다.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있을까... 딸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글자에서 눈으로 마음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촉촉한 감정선을 타고서.

    

아이들의 생각과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생각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초등학교 이전에는 그 간극이 거의 보이지 않으나,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딸과 아들 구분 없이 서로의 언어가 다른 것처럼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


딸이 자신의 영혼에 깃든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부모는 안다. 그 과정이 사춘기라는 과도기를 통해 다소 거칠게 표현되기 때문에 외피는 갈등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부모로서 이것 또한 모를 리가 없다.    


그 시절의 간극은 서로에게 바람직한 여백이 될 수도 있고,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소원함이 될 수도 있다. 딸이 속으로 생각하는 애틋함이 결코 자신의 말로는 표현되지 않을지라도 부모는 섣부른 기대나 실망감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십 대일 때 부모 자식 간에는 예외 없이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가에 따라서 그 이후의 시간이 달라진다. 서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서로가 어떤 시각으로 그러한 상황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이다.  

   

살가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더 이상 멀어질 수 있을까 싶은 관계도 그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먼 거리가 존재한다.   

   

바로 가슴에서 가슴까지.   

  

결국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가슴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의 문제다.


그 거리가 얼마나 가깝고 의미 있었는가에 따라 따뜻한 온천수가 흐를 수도, 차가운 남극해의 바닷물이 흐를 수도 있는 것이다. 십 대 때 부모 자식 간에 그 거리의 문제가 의미 있게 전개되면 정말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식이 이십 대 이후에 양자 간의 관계는 대화가 사라진 남극해에 도달할 수도 있다.

    

우리 부모들이 그 보이지 않는 여백이 관계를 결정하고, 그 여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좋은 부모 자식의 관계가 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바람직하지 않은 간극은 줄이고 의미 있는 여백은 늘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렇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서로 이해의 정도나 상황에 따라 진짜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려 했거나 그 노력이 부족했거나. 그 어떤 틈바구니 속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정한 편견을 가진 채로.

      

 생각은, 우리 집은, 지금 어떠할까?   


지금은 스무 살이 넘은 큰딸과는 밤늦은 거실에서, 간식을 먹는 식탁에서,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도 많은 대화를 한다. 직장생활과 친구들과 회식문화 등에 대하여.


둘째 딸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절벽을 넘고 있고 자신의 벽을 서서히 허물고 있다.

셋째이자 큰아들은 자신의 마음을 포스트잇으로 책상 위에 붙일 나이가 되었다. 까칠한 사춘기 중학생.

막내이자 둘째 아들은 말 많고 말 안 듣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미운털이 온종일 집안을 떠돈다.


우리 집에는 늘 따뜻한 온천수가 흘렀으면 하는 바람은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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