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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21. 2019

초등학생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풀과 꽃의 구분이 뭔가요?

#1.

직원들에게 강의할 때 PPT 첫 화면에 보여주는 문장이 있다. 바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있는 유명한 이 구절.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이 문구들은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이 의미 있는 아포리즘이다. 그래서 강의 중 중저음으로 목소리를 깔고 이렇게 질문을 던져본다.


"이 멋진 문장에서 주제어 두 개를 찾아본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 두 단어는 주로 어린 아이나 노인분들이 많이 표현하는 것들이죠"라는 힌트도 준다.


연수생들의 대답은 참으로 다양했다. 이래 봐도 우리가 객관식으로 국어시험을 봐온 세대 아니던가. 처음에는 서로 우물쭈물 눈치를 본다. 그럴 때 나는 수강생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어차피 이런 질문은 정답도 없고 극히 주관적인 의미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에 자극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개미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들은.


"아침과 저녁이요", "하루와 만물이요", 심지어는 "죽어가듯이, 태어나듯이요"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다른 누군가가 웃는다. 비웃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대답이 결코 틀렸다는 것인 아니지만, 질문자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문학작품이나 문장에서 주제어나 뉘앙스에 관한 문제를 내는 것 자체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가 배워온 바에 따라, 이 문장에서 굳이 핵심 어구를 두 개 고른다면.(이걸로 말하는 이의 국어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아마도......"순간과 경탄"....... 일 것이다.



#2.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길을 걷다 보면 매 순간 보이는 것들이 신기한 세상이다. 아빠의 눈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들도 아들의 눈에는 모두가 감탄의 대상이다. 아빠 걸음으로는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아들과 함께하면 30분 넘게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하며 간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들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작은 꽃이 필수가 있지. 이 꽃의 이름은 뭐지?"

나뭇가지에 달린 어린싹을 보고는 "이 싹이 나중에 뭐가 될까. 나뭇잎이 될까 단풍이 될까?"

주인과 산책 나온 애완견들의 다양한 생김새를 보고는 "강아지들은 어째서 저렇게 다르게 생겼을까? 사람을 무는 개는 어떻게 구분하지?"

보름달과 기우는 달을 보며 "달은 왜 모양이 변할까? 지구의 그림자가 달한테 영향을 준다는데 진짜일까?"

붉게 물드는 저녁놀을 보고는 "해가 지는 게 슬퍼서 하늘이 붉어진 걸까? 아니면 공해가 심해서 그럴까?"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 의문이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이 다시 또 다른 의문을 가져오는 것이 어린이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말이 많고 질문이 많다. 모든 것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보고 듣는 게 많아 실제로도 많이 안다. 알고도 부모가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은근히 있는 거 같고. 이런....


부모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아이들이 묻게 되면 부모는 귀찮을 수밖에. 어떤 질문은 부모들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도 물어서 황당할 수밖에.


아이들은 호기심 천국, 부모들은 왕짜증 혹은 귀찮음 지옥.



#3.

최근에 초2 아들이 아빠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들.


1) 아빠, 풀과 꽃은 어떻게 구분돼?

이런 질문은 아빠를 당혹게 한다. 아주 어릴 적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 기억만 있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더 알아보거나 노력해본 적은 없다. 중고등학교 때 생물 교과시간에도 이런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생각해보지도 알지도 못할 것이다. 아빠도 의문이다. 식물을 나무와 꽃과 풀로 구분할 있나? 꽃과 풀의 구분은 어떻게 하지. 풀에서 피는 꽃은 꽃이라 부를 수 없나? 저명하신 식물학자들께서 대답 좀 해주시라. 궁색한 아빠의 대답은 "글쎄...."


2) 아빠, 육식하는 사람과 채식하는 사람 중 누가 옳아?

아들이 하는 질문 중 제일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뭐가 옳은가, 그른가이다?"이다.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끔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의 가치 성향을 뭐가 옳고 뭐가 그르고 어떻게 얘기한단 말인가? 여기에는 생명과 종교와 개인의 신념이 몽땅 포함된 것인데. 이럴 때 아빠의 머릿속은 햄버거 속에 끼인 패티처럼 처량한 신세가 된다. 역시 대답은 "글쎄....."


3) 아빠, 왜 어른들은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지?

가끔씩 어린 아들은 엄마와 아빠의 얘기를 엿듣는다. 어른들의 일상이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저녁에 귀가한 부모의 입에서 아주 따뜻한 문장만 나오지는 않을 터. 살기 힘들다는 엄마의 말에,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아빠의 말에. 아들은 어른들은 사는 게 왜 힘드냐고 묻는 것이다. 본인은 평화롭고 좋기만 한데.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지도 않을 것인데. 이 역시 설명하기 참 거시기하다. 힘들게 살아가지 않는 방법도 있을 거는 같은데, 그런 모습을 아들한테 보여주지 못해서일까? 아빠의 대답은 '너도 한번 살아봐라, 그러면 알게 될걸'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뒷머리를 긁으며. "글쎄....."


4) 왜 아빠들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같이 안 놀아줘?

아들은 하루 종일 놀다가도 아빠의 귀가시간을 궁금해한다. 아빠의 스마트폰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아빠랑 할 수 있는 여러 놀이가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빠는 중요한 놀이도구 중 하나다. 말도 되었다가 안마기도 되었다가 충실한 시종이 되기도 한다. 보드게임과 오목, 카드놀이 등 주방에서 바쁜 엄마랑 할 수 없는 것을 아빠에게 바란다. 그래서 아빠의 귀가가 늦어진 날은 꼭 묻는다. 아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왜 같이 안 놀아줘? 어제 그제 주말 내내 놀아준 것은 뭐란 말인가. 억울한 아빠는 할 말이 없다. 쩝쩝....


5) 아빠는 엄마가 더 이뻐, 아니면 걸그룹 누나들이 더 이뻐?(당혹스러운 질문이다)

간혹 TV 가요 프로나 유튜브에서 걸그룹 영상을 보다가 아들이 묻는다. 아빠 "트와이스 누나들 중 누가 제일 이뻐?" 아빠는 걸그룹 명칭이나 구성원의 이름도 몰라 대답도 할 수 없지만. 그러다 다시 한마디 묻는 아들."아빠, 엄마가 더 이뻐, 걸그룹 누나들이 더 이뻐?" 그 질문의 의미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는 아빠. 실제로 그들의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어 비교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문제는 다음의 상황이다. 아빠의 대답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빠를 때리러 오는 아들. 대답을 머뭇거리며 주저하면 눈을 흘기는 엄마. 이마저도 모른 체 침묵하면 온 가족의 주목을 받게 되는 이상한 상황. 에라 모르겠다. 막 던지는 아빠.

"글쎄 엄마가 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참"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미와 아침이슬을 말하는 이들은 어린이들밖에 없다. 이제 어른들의 눈에는 이런 작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할 일도 많고 포기해야 될 것도 많은 세상에서 그것들은 이미 어른들의 관심 범위에서 벗어나 있어서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직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흥미를 갖고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그 호기심이 메마르지 않아 세상은 오래도록 어린 왕자를 소환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일상에서 이런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걸까? 단지, 어른이기 때문일까?


누가 풀과 꽃을 구분해놓았을까? 그분(혹은 그분들)은 제발 제대로 된 대답을 해달라. 우리 아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아들은 과 꽃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풀이라 불리는 것에서 피는 꽃들은 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네 잎 클로버, 민들레, 작은 들풀인지 들꽃인지 등등.


그래도 엄마와 걸그룹을 비교하는 것은 오버다. 아빠의 상상은 자유고,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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