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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ug 27. 2019

이겨내야 한다는 말이 미안할 때

면접을 앞둔 딸에게.....

창밖의 어둠은 적막의 강을 건너고 있다. 거실에 아빠와 큰딸이 마주 앉아 대화를 한다. 침묵이 어색하게 LED 등 아래 파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딸의 진로문제다. 공무원이 더 좋은가 아니면 공기업이나 사기업의 직원이 더 좋은가부터 어떻게 수험공부를 시작할까의 문제다.   

  

딸은 면접이 두렵다고 한다. 무섭다고도 말한다. 아빠는 면접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미리 겁부터 먹느냐고 얘기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면접은 모든 사람을 떨게 한다. 머리를 하얗게 하기도 하고 다리를 후덜덜하게 하기도 하고 말문을 막히게 하기도 한다.     


누가 그걸 모를까. 아빠의 심정은 일반적인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딸의 면접에 대한 공포심이다 보니 바로 내 일처럼 느껴져 한마디 했을 뿐이다.  

   

딸은 아빠의 주장이 일방적인 것 같아 속이 상한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올라 눈물까지 흘린다.  

   

차라리 아빠가 “그래 면접은 누구나 떨리게 하고 어렵지”하고 했으면 좋으련만.... 그 말만 하고 밤의 고요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았으면 좋으련만.    

 

생각해보면, 아빠도 아주 여러 번의 면접 경험과 면접관의 경험도 있다. 그래서 담담하게 면접을 치르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얘기했는데, 서로의 경험치가 다르다 보니 대화가 엇나간 것이다.

     

살다 보면 두려운 순간이 많다. 수많은 시험 준비와 타인들 앞에서 얘기할 때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오바마나 스티브 잡스처럼 차분하게 자신의 얘기를 끌어가고 박수까지 얻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실 그들도 한없이 떨리고 그런 자신감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빠는 딸의 나약한 면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좀 더 강해지라는 주문을 했을 뿐인데, 딸은 그 점이 자신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 같아 서운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쉽게 극복하라고 이겨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냥 남의 입장을 이야기할 때만 쉬워 보일 뿐인 것을. 위로의 격(格)에도 맞지 않고, 어느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언어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들은 타인의 사정이나 처지를 살피지 못해 억지로 강요하는 주장 그 자체일 뿐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이겨낼 수 있게끔 조용히 지켜봐 주고 두려운 마음을 말로 들어주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두려움이나 공포가 주는 실체가 분명치 않은 것에 대하여는 결국 자신만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그 순간만큼은 지구의 무게만큼 감당하기 어려웠던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어느 누구든지.    

 

그 점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아빠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타인이 들여다보기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약한 부분이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의 강점이나 장점이 될 수 있을 터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어리석게도.   

   

하지만 우리는 결국 안다. 시간이 아주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삶의 지혜를 길러주는 산파라는 것을.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한테 사이클 선수 같은 주법(走法)을 얘기한다든지, 아직 한글도 익숙지 않은 아이한테 주홍글씨나 신곡을 이해하냐고 묻는다든지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인데도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여전히 ‘어린 왕자’ 마저도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떨리고 두렵다.     

 

삶은 반성과 후회의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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