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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08. 2022

우리의 인생플랜 A는 벚꽃엔딩을 기대할 수 있을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망을 물었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건 세 개의 소망일까?)   

  

...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저 세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를 만족시키기에도 만만치 않은 것이어서, 상당수가 말 그대로 희망에 그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평생 갈 수 있는 좋은 직업... 진심으로 바라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 더할 나위 없이 바라는

크고 작은 질병 없는 건강하고 활기찬 삶.... 절대적으로 바라는  

    

B부장은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인 절친과의 만남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과 출신으로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로 살아가던 친구 K의 죽음. ‘아직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고 친구랑 아쉬운 눈빛을 교환했지만, 황망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고등학교 시절 동창생들의 인생 궤적을 떠올려보았다.   

   

당시 이과에서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거의 의대를 지원했고, 문과 쪽에서는 법대나 상경계열 쪽으로 전공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 이후의 직업도 의사나 한의사, 고시 합격자들이 여럿이었다. 대충 세어보니 의사 8명과 고시 합격자 4명이 나왔다. 고시 합격자 중 한 명이 여기 있는 B부장이다. 이들은 다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잘살고 있을까?(주관적 평가를 덧붙이면 다들 그럭저럭 살고 있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살펴봤다. 일찍이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서울시 구청 과장으로 살아가는 친구, 가스 배달로 시작해서 작은 가스회사를 운영하는 친구, 정치에 뜻을 두고 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는 친구, 문학과 연극을 동경하더니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를 하고 있는 친구 등등. 어느 누구 하나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은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서로 닮을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없는 자기만의 인생경로를 통해서 자기만의 미래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의 소망처럼 인생플랜 A에서의 성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격요건과 화목한 가정, 운동과 섭생을 통한 건강 유지가 요구된다. 하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조건이 얼마나 갖추기 힘든 건지 여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리는 생물학적 노후는 지연되지만, 사회학적 노후는 오히려 빨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건강수명이나 잔여수명은 늘어나지만, 하나의 직업이 가진 수명이 취업자들이 원하는 기대 정년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의 고성장 시기에 중장년기를 보낸 이들의 로망은 조기 은퇴 후 세계여행이었다. 그만큼 근로환경이 친기업적인 스펙트럼 안에 놓인 까닭이다. 또 그 시대에는 생물학적 노화로 인한 기대수명이 현재보다 훨씬 짧게 느껴질 때였다. 실제로 70-80년대에 빈번했던 회갑잔치가 최근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는 60대의 경우 경로당에 출입 자격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말 그대로 생애주기에서는 젊은 세대에 끼지만 노동시장에서는 정년 이후의 퇴직자가 된다.    

   

그래서 생각보다 젊은 은퇴자, 인생 2막을 위한 재취업 희망자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시장은 재취업 가능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의 취업 상황을 살펴보면, 취준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이삼십 대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다. 먹고 살아가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은 50~60대 혹은 40대들에게도 손 안의 뜨거운 감자가 된 지 오래다.        

    


우리는 인생플랜 A에서 봄날의 벚꽃엔딩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친구가 스스로 묻고 답했다.

"왜 사람들은 좋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까? 연봉 3억 넘게 받는 의사들도, 정년이 보장된 억대 연봉의 다른 파트의 직원들도.... "

"병원에서도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개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비슷한 것 같은데... 그래서 직원들끼리 운동하고 즐기는 술자리도 많고, 서로가 동병상련의 애로와 애환을 술잔처럼 주고받곤 하지. 그래야 뭔가 마음속의 뭉친 것이 사라지기도 하고... "

    

이 친구는 통신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터라 전기설비 파트에 근무를 했다. 30여 년 동안 대학병원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병원의 구성원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의사, 간호사, 행정업무 직원들, 기술지원팀, 환자와 간병인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희비와 스트레스와 걱정이 교차하는 것을 바라봤다고 했다.  

    

어느덧 B부장이 된 이 친구의 결론은 이랬다.

"우리 병원 사람들을 보면... 다들 누가 보더라도 좋은 경제적 여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불안과 불편함이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이들 또한 마음과 몸이 아파서 속병이 난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보다는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낮은 게 더 문제 같기도 하고..."(결론인지 또 다른 질문인지 의문은 남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계획 여부와 관계없이 인생플랜 A의 과정을 지난다. 60세 이후의 생애가 짧았던 시절에는 "인생플랜 A + 짧은 노후"가 대부분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의 로망이나 버킷리스트에는 늘 "세계여행"이 끼여 있었다. 막상 주위를 돌아보면... 실제로 세계여행이라는 희망을 실현한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 특유의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 특별한 교육열에 의해 세계여행 경비는 대부분 자식들의 교육비에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B부장 세대는 어떠한가? 아마도 막연한 세계여행에의 동경은 없을 것이다. 상당수가 신혼여행부터 비행기에 올라 낯선 나라를 여러 번 경험하기 때문이다. 런던과 파리, 뉴욕과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가족여행으로 친구들과의 동행으로 나라밖 구경을 하는 것이 일상인 세상이 된 까닭에 이제는 세계여행의 목마름은 덜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백세 인생’이라는 노후가.... 그 기다림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인생플랜 A의 문제’가 ‘대책 없는 노후’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가장 각광받는 주제 중 하나가 노후준비다. 몇 꼭지만 들여다보더라도 공무원 퇴직자를 비롯해서 각종의 공사 조직에서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한 이들의 한숨과 후회가 함께 버무려진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러이러한 준비를 미리 했더라면 지금 이러지 않을 터인데...’ 후회막급이라는 뉘앙스의 현황을 전달한다. 시청자들의 댓글에는 그런 후회를 반면교사 삼아 현직에 있을 때(혹은 더 젊을 때) 철저히 준비를 하겠노라는 자기 반성문도 많이 보인다.    

  

인생플랜 A에서 운 좋게도 평생을 지속할 수 있는 소수의 직업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댓글을 달고 있는 시청자들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그나마 플랜 A를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저 대형병원의 가족들처럼 속사정은 모를 일이다. 현재의 진행상태가 어찌 됐든지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인생플랜 B "를 위한 또 다른 계획을 고민하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의 B부장 세대들은 인생플랜 A에서도 불편하고 노후에도 불안한 세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평범한 이들이 소망하는 삶은 말 그대로 희망에 불과한 걸까? 그나저나 인생플랜 B에 대한 고민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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