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다.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로 수많은 새해 인사가 오고 간다. 1월 1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강력하다. 뭔가 새해 첫날이 되면 지나간 것에 대해 유독 아쉬워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분명히 설 연휴 전까지 새 책 초고 마무리는 하자고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연휴가 시작되면서 초고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올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또 고민한다.
매일 일상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난다. 내 기준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회사에 출근 시 몇 번 버스를 타야 할지, 사무실에 도착하면 어떤 업무도 처리해야 할지 등등이 그것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깨워 어떤 옷을 입힐지, 누구부터 깨워서 학교와 유치원에 보낼지 등등 어떻게 보면 매일 마주하는 작은 문제들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오늘 학교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숙제를 할지 말아야 할지 등등이 있다. 그들도 자기 입장에서 매일 사소한 문제와 마주한다.
이런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한다. 문제 해결 방법 중에 가장 합리적이거나 현실 가능한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을 판단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 될 수 있다. 꼭 심각하고 무거운 철학적인 판단이 개입되어 나를 알아가는 공부가 인문학이 아니다. 이렇게 일상의 사소한 문제가 생겼을 때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꼭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와 바닥을 친다거나 문득 실직, 육아 등을 접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고 있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궁금할 때 인문학을 외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세상 자체가 인문학 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와서 트렌드를 만들었다.
뭔가 인생에 거창한 이벤트를 생겨야 인문학을 만나는 것처럼 포장되었다. 그저 인문학이 유행하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공부해야 한다고 외치니까 덩달아서 아무 생각없이 나도 해봐야겠다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철학자 이름과 사상을 달달 외워서 인문학을 논하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 자체가 정말 그 사상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인문학은 본래 내 인생에 생기는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인생은 내가 매일 만나고 접하는 일상의 합이다. 결국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매일 일상에서 마주하는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한다. 오늘도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등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말한대로 “일상 속에서 살며 일상을 체험하되, 일상을 그냥 수락하지 말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생각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인문학적 일상을 오늘도 같이 영위하기를 바란다. 인문학과 일상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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