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가 10대부터 30대 젊은 날 겪었던 여러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때로는 감미롭다가 황홀하고 애절한 사랑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별, 질투 등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허무함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로 하루키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잃어버린다는 의미의 상실을 많이 겪는다. 누구나 어떤 종류든 이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의 이별, 부부의 이혼 또는 사별, 원치 않은 병의 선고, 직장에서의 해고와 실직 등 어떤 형태로든 인생에서 몇 번의 상실을 경험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피부가 노화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젊음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처음 느낀 상실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 전까지 즐겁게 잘 다니던 학교생활이 아버지의 한마디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시절 아버지에게 서울로 전학가야 잘 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 지금도 전학을 굳이 가지 않았다면 더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운명의 추는 결국 원하지 않는 전학을 가게 만들었다. 전학간 학교에서 왕따 비슷한 따돌림을 받았던 순간부터 뭔가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그동안 누려왔던 안정감이 무너진다. 삶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허무함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오래된 것에서 익숙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뭔가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불안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느꼈던 그 상실감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금도 예전 전학갔던 학교를 지나가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아보니 상실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실직과 이직의 반복,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해 피폐해진 허전함,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등 그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늘 내 마음 안에 큰 돌덩이가 얹힌 느낌이었다. 피할 수 없는 상실이라면 받아들일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남은 내 인생에 얻는 것보다 그만큼 잃어버릴 대상이 늘어날 것이다. 그 상실을 원망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태도이다. 물론 잃어버린다는 상황을 막상 닥치면 또 슬프거나 힘들겠지만, 예전처럼 계속 주저앉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시인 류시화가 말한 “인간은 소유하고 경험하고 연결되기 위해 태어나지만 생을 마치는 날까지 하나씩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 삶의 역설”이라고 했다. 아마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그것이 마지막 상실일지 모른다. 빈 손으로 태어나서 다시 빈 손으로 돌아갈 인생인데 뭐가 그렇게 하나 잃어버린 것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대신 그 상실을 나를 바꿀 수 있는 변화의 기회로 삼아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멋진 인생이 아닐까? 오늘도 잃어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비워보는 연습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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