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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혼란스럽다면 더 잘 될 겁니다.

by 황상열

10년전 다니던 네 번째 회사에서 해고통보를 받았다. 아직 추운 겨울날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도 얼어붙었다. 내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이 슬로우가 된다. 내 머릿속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사회가 맞추어 놓은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20대 후반에 취업하고, 30대 초반에 결혼했다. 그 시절 나는 그 기준에 미달하면 사회에서 도태된다고 믿었다. 어떻게든 남들이 다하는 보편적인 것들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취업, 결혼, 사회적인 성공이란 세 가지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것만이 내가 인생에서 성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회적인 성공은 켜녕 회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나름대로 인생을 잘 달려왔다고 여겼지만, 내 착각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지만 이미 머리의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일에 손이 잡히지 않았다. 어려운 회사사정과 내 업무 실수등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내 질서는 모두 무너졌다.


다른 사람들이 퇴근하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내 머리와 마음 속의 혼돈은 가라앉지 않았다.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계속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이 혼란스러운 감정과 마음을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좀 정신이 드니 현실이 보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 다 끝났구나.


며칠이 지나고 마지막 근무날이다. 팀원들과 회식을 하면서도 덤덤했다. 헤어지고 나서 그 시절 살았던 전셋집 앞 전봇대에서 오열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남는 것은 없었다. 실패자라고 여겼다. 인생 자체가 혼돈 그 자체였다.


인생의 수많은 위기가 있지만 그 시절 만큼 크게 일어난 적은 없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사회가 만든 기준에만 부합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니 낙오자가 된 느낌이다. 혼란스럽다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익숙한 패턴대로 살았다. 인생의 정답을 하나만 알고 있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어린 시절 힘들 때마다 책을 읽고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다시 살아야 했다. 책을 읽다 보니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좁은 시야에서만 살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변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익숙하지 않고 겪어보지 않아서 두려운 감정이 들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혼돈의 과정을 거쳐야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혼돈의 끝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만나 다시 새로운 질서를 찾게 되었다. 혹시 지금 혼란스럽다면 더 잘 될 것이라고 믿어보자. 자신에게 새로운 변화가 다가온다고 생각하자.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나는 인생의 모멘텀이 결국 다시 살게 하는 힘이 될테니까.


혼돈은 좋은 것이다

혼돈은 흔하고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새롭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혼돈은 창조인 동시에 파괴이며,

새로운 것의 근원이자 죽은 것의 종착역이다.

- 조던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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