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씨에게 보내는....
어느 순간부터 '역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 혹은 문화유산이라 부르는 것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부 왕들.... 그러니까 과거 지배 계급의 이야기가 아닌가? 왕이 살던 집을 구경하고, 당대 권력가의 집이라고... 과연 그게 우리 역사의 전부일까? 하는 생각에 역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역사란 지배 계급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중들의 삶에 대해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의 삶은 먼 훗날 어떻게 남겨질까 상상해 보면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100년 후, 박근혜와 최순실은 하루하루가 상세하게 남게 되지만, 이를 규탄한 촛불 집회의 수백만의 사람들의 삶은 고작 몇 줄로 요약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뭔가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런 생각에 골몰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반(?) 역사' 같은 것... 아주 작은 개인의 이야기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빅 데이터 분석처럼 지금을 사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모으면 역으로 먼 옛날 우리가 몰랐던 사람들의 생활을 거꾸로 복원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와의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난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신들의 삶이 역사라는 권력에 비해서는 보잘것없겠지만... 최소한 나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나는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그랬다, 보잘것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직 먼 길이지만... 계속해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당신들의 이야기를 묻고 듣고 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한 가지가 생각났다. 바로 '문학'이다. 역사가 지배 계급의 이야기라면, '문학'은 보통 사람들의 기록이 아닌가... 한동안 외국의 장르 소설만 봤왔는데, 이제야 우리 문학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얻게 된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을 한 순간도 놓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안 그래도 집중력 떨어지는 요즘에...)은 이런 변화도 한 몫했다. 한 장 한 장면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고민하던 바로 그 '역사'가 이 안에 있었다. 읽는 내내 가슴 한쪽이 서늘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너무나 소중한 82년생 김지영들의 존재에 감사했다. 어쩌면 대부분(절대 '모두'는 될 수 없겠지..) 사람들의 삶과 존재는 '없음'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삶의 투쟁이란 그 '존재 없음'에 대항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해서 여전히 많은 질문이 남겨져 있지만, 오늘만큼은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다는 아주 작은 위로와 사과를 전하고 싶다. 위로와 사과라는 말도 딱 맞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것마저도 아니라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I hope you don't mind that I put down in words
How wonderful life is while you're in the world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2016년 10월 14일 1판 1쇄
2017년 8월 28일 1판 31쇄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13)
지난달 서점에서 문득 눈에 띄어서 혹했었는데, 한 달 동안 여기저기서 자꾸 연결이 되어서 며칠 전에 사두었다가, 오늘 다 읽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펼쳤는데, 끝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문장이다. 내가 그토록 쓰고 싶은 그런 문장들인데, 결코 쓸 수 없는 그런... 두 번째는 편집의 문제. 결국 편집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인데'라는 자위를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결혼 이후?) 한국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최근 들어 약간 변화가 생겨서... 서점에 가면 꾸준하게 한국 소설 서가를 서성이곤 했다. 이제 다시 우리 작가들을 만날 준비는 된 것 같다.
표지 그림: 서니니, [그녀](2016. Acrylic, pencil on paper. 26.8 x 19.7cm), 표지 뒤면에 자세하게 나와있어 옮겼다. (이런 것 좋다)
Your song (by Rod Stewart): 4분 47초
작사, 작곡: Bernie Taupin, Elton John
1991년에 발매된 엘튼 존(Elton John)과 버니 토핀 헌정앨범의 11번째 수록곡으로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불렀다.
원곡은 1970년 엘튼 존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Elton John'에 첫 번째 곡으로 발표되었다.
당연히 엘튼 존이 부르는 노래가 좋다. 그럼에도 이 헌정 앨범은 수많은 헌정 앨범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좋아서... 로드 스튜어트의 커버를 대표로 앞세웠다. 참여 가수의 면면이 딱 내가 좋아하는 라인업인 데다, 곡이 좋으니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음악의 주인공은 음악 그 자체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 앨범을 통해서 새로 좋아하게 된 엘튼 존의 노래도 많다.
이 앨범은 어느 비 오는 날 명동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rain'을 들었던 그 꼬마 아가씨(그래도 82년생 김지영 씨 보다는 언니다)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가장 오래 잘 챙겨 듣는 앨범 중 하나다.
비교적 최근에는 엘리 굴딩(Ellie Goulding)이 커버하여 차트에 2위에 오른 바 있다. 엘리 굴딩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 곡은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곡의 뮤직비디오는 '82년생 김지영'씨가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I hope you don't mind....라고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