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use I am an innocent man
시간은 휴일인 줄도 모르고 새벽부터 알람을 울려 댄다. 한번 더 자려고 하다가 문을 열어 보니, 세상이 깨끗하게 청소된 유리창처럼 쨍하다. 지난 저녁 동네 전체가 전체가 비에 젖고 어둠에 묻혀 왠지 스산했었는데, 갑자기 맘이 바뀐다.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면도도 해 본다. 그런데 뭘 하지? 어딜 가지? 결국 할 것도 갈 곳도 없다.
TV를 껐다. 꼬박 한 달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그냥 볼 것도 없고, 보기 싫어서 그랬는데, 이제는 오기로 그런다. 담배를 이렇게 끊어야 하는데... 점점 노트북을 여는 시간도 줄어든다. 참 묘한 게, TV를 켜지 않으니 할 일이 진짜 없어서 다른 할 일을 만들어게 된다. 덕분에 방 청소도 더 자주 하게 되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늘었다.
더위가 물러가서 그런 건지 TV 끄고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지... 책, 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푹 빠졌다. '82년생 김지영'이후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쉴 틈도 없이 계속 읽고 있다. 총 17권 중에 8권을 사서 읽었다. 어제 시작했던 '밤의 여행자들'을 오늘이면 다 읽을 것 같아, 책 한 권 가방에 넣고 방을 나선다.
잠시 사무실에 들러 외장 하드 다시 포맷하고, 데이터 옮기는 동안 책을 마저 읽는다. 8권째인데... 작품마다 매력이 넘쳐 난다. 누군가 평가를 하라면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오후가 되어 서점으로 행한다. 가면서 2권만 사야지 했는데, 서가에서 하나하나 책을 찾다 보니 4권이나 집어 들었다. 이제 17권 중에 12권을 구했다.
이제 책을 읽으러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한다. 방 앞(옥상)에서 자리 잡아도 되는데, 왠지 그러기에는 아까운 날이다. 야외 테라스가 있고,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혼자 앉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한적한 곳... 뭐 먹은 것도 없고 해서, 화정 박물관 밑의 카페로 가려고 했으나 먼저 오는 버스가 다른 노선이어서 먼저 버스를 타버리고는 목적지를 변경한다.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서서히 저물어 가는 햇볕을 받으며 나머지를 다 읽었다. 이번 작품은 여운이 남기보다는 그 과정이 깊었다. 생각보다는 빨리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나름 완벽한 하루였다고.... 스스로 만족한다.
방에 들어와서 빌이 조엘의 'An innocent man'을 틀어 놓고, 가사를 열심히 본다. 왠지 '순수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무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사의 내용은 순수한 사람이 맞다. 사람, 사회, 세상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충고(?)하는 내용이다. 노래가 살며시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An innocent man (by Billy Joel): 5분 16초
작사/작곡: Billy Joel
1983년에 발매된 빌리 조엘(Billy Joel)의 9 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앨범에는 두 번째로 수록되어 있고, 싱글로는 세 번째로 발매되었다.
팝계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급의 뮤지션이고 '52nd Street'를 비롯한 많은 명반이 있지만, 내가 선택하는 앨범은 늘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은 미국의 50~60년대 음악(주로 doo-wap과 soul)에 대한 오마주를 콘셉트로 하고 있으며, 각 곡마다 메모가 되어 있다.
An Innocent Man은 Ben E. King과 The Drifters에 대한 오마주다. 유튜브에서 The Drifters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가만히 듣다 보면 70년대 가요와도 비슷하게 들린다.
최근에 다시 아이튠즈의 리스트를 다시 정리하고 있는데, 앨범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뮤지션들의 경우는 사실 베스트 앨범을 두는 게 훨씬 편하다. 좋은 앨범이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앨범이 아니더라도 좋은 곡이 너무 많아서... 앨범을 기준으로 정리하기가 힘들다.
사실 초창기에는 빌리 조엘의 2장짜리 베스트 앨범을 LP로 반복해서 들어서 나중에는 오히려 그의 디스코그래피가 생소한 느낌도 들었을 정도였다.
이 곡에서 빌리 조엘의 고음을 들을 수 있는데, 후에 본인이 밝히길 언제까지 고음을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어서 해본 것이며, 이것이 그의 마지막 고음이라고 한다.
가사도 그렇고 참 좋아하는 곡인데, 워낙에 오리지널로 명곡을 많이 쓰고 부른 사람이라... 잘 부각되지는 않는 것 같다.
26회 그래미 시상(1984)에서 올 해의 앨범 부분에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 해 수상작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였다. 팝/록 역사에서 여러모로 화려하고 또 풍성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순전히 주관적인 관점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