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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Dec 25. 2017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Erik Satie - Gnossienne #1

나는 내 삶이 부끄럽습니다. 종종 지인들이 팟 캐스트를 하라는 둥, 방송에 나가 보라는 둥의 농담을 하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능력은 둘째 치고라도...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일 자신이 없습니다. 뻔하지요. 사람들은 나의 가장 불편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할 테니까요. 암요. 당연히 나에게도 부끄러운 일들이 있지요. 다만 그 일들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 삶 모두가 부끄러운 뿐입니다. 공인이든 연예인이든 다른 건 몰라도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 놓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어떤 '주장'을 하는 일도, '의견'을 내놓는 일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적으로 술자리에서는 편하게 강력한 '주장'을 하기도 하니...) 가장 먼저 스스로 의심을 합니다. 내 주장이 맞는 것일까? 혹시 아니면 어떡하지?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라던가, '지금까지는'이라던가 '... 같습니다'와 같은 말들이 덕지덕지 따라붙게 되고, 주장은 주장이 아니게 되고, 의견은 의견이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욕망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움 역시 비교를 통해 생기는 것일 겁니다. 비교가 없다면 부끄러움 같은 것이 생길 리도 없겠지요. 그러니까 무언가를 욕망하던 나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나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삶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내가 부끄러워한들, 후회한들, 그다지 영향력도 없습니다. 언젠가 소리 없이 소멸해갈 따름입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의 삶을 살아갈 뿐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올해는 조용히 마음 한편을 비워봅니다.


뭐 어떻습니까? 신을 믿든 안 믿든 일 년에 한 번 정도 자신을 돌아 보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넓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 괜찮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한 때는 눈 내리는 것을 싫어했었는데, 몇 번 한 밤에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는 가운데, Erik Satie의 Gnossienne #1이 머리 속에 들리면, 지나간 부끄러움이 조금은 빠져나간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One Day'라는 소설이 있지요. 영화로도 만들어졌었고요. 재미있는 아이디어지요. 어쩌다 보니 매년 크리스마스 포스팅을 하게 되는데, 제 나름의 크리스마스 캐럴 프로젝트입니다. ^^;; 이렇게라도 내 삶의 흔적을 남기게 되길 바라 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포스팅
2015년 크리스마스 - 싸워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화해하지 못해서 불행한 것
2016년 크리스마스 - 혼자인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Erk Satie - Alexandre Tharaud (2009)

Gnossienne #1 (by Alexandre Tharaud): 3분 32초

작곡: Erik Satie

2009년 발매

프랑스의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Erik Satie)의 곡이다. 공식 이름은 Éric Alfred Leslie Satie인데 본인이 Erik Satie로 사인했다고 한다. 괴짜이자 선구적인 예술가로 음악뿐만이 아니라 글도 많이 남겼는데, 글은 대부분 가명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1887년부터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할 시기의 곡이다. Gymnopédies와 더불어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며, 발표 당시에 3개의 모음곡이었는데 , 사후에 추가로 발견된 곡이 출판(1968년)되어 지금은 1번부터 6번까지 총 6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에릭 사티가 제목과 번호를 매긴 흔적은 전혀 없다고 한다. 4~6번은 이 자체가 모음곡 같지도 않다는 의견도 있다.

Alexandre Tharaud 역시 프랑스의 피아니스트인데, 이 앨범의 첫 번째 곡이다. 이 앨범에는 2장이 CD에 총 71곡의 에릭 사티의 곡이 담겨 있다. 총 연주 시간은 2시간 7분. 각각의 곡이 짧은 편인데도... 워낙 많은 곡이 있어서 전체 연주 시간은 만만치 않다. 얼핏 뉴에이지 풍의 느낌이 나는 곡도 있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 같은 것도 있고, 실험적인 곡도 있다.

이 음반은 과거 몇 번 풍월당에 들를 때 고른 음반인데, 표지와 함께 'harmonia mundi'라는 레이블이 선택을 쉽게 해주었을 것이다. 하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는 프랑스의 독립 레이블인데, 클래식 특히 바로크 이전 시기의 음악을 많이 발굴해서 좋아하는 레이블이었다. 50장짜리 박스세트도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에릭 사티와 곡에 대한 해설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는데, 솔직히 충분히 소화가 되지 않아서 편안하게 풀지는 못한다. 그냥 궁금한 사람은 많은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이 정도로만 하고, 가장 괜찮게 읽었던 글을 하나 남긴다. 에릭 사티, <6개의 그시엔느> (채널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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