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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ul 07. 2018

Time has told me

Leave the ways that are making me love

1. 간만에 영화에 대해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제인 'The sense of an ending'에 가깝게 가려면 '슬픈 예감' 정도로 간결한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를 생각나게 하는 거라면 말이다. 대개 이런 영화는 그냥 지나칠 법한데.... 잠을 자려다 실패한 새벽 3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니, 뭔가 깨닫는 것이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좋았던 점은 주인공의 '현재 삶'이다. 혼자 사는 노인의 일상을(살짝 과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담담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 괜찮았다. 게다가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영화라고 했지만, 그게 어떤 반전쯤인지는 대충 짐작하고 남는 편이서 오히려 다른 부분들을 눈여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중간에 닉 드레이크의 노래가 들리면서 '어? 형이 여기서 왜 나와?'라는 놀라움.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도대체 이건 뭐 하자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기분? 시간과 기억을 섞어 놓은 것은 어설펐고, 엔딩 역시 김 다 빠진 사이다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원작이 2011년 맨부커 상을 수상한 소설이라니... 뭔가 있겠지... 당장 원작을 읽고 싶었으나, 우선은 소개 자료를 찾아보고, 이 영화에 대한 평도 몇 개(없었지만) 읽어봤다. 대체로 절반만 수긍하는 정도? 과연 이 영화가 '기억'에 대한 그리고 다수가 인용하는 '역사'의 불확실성이라는 것에 대한 걸까? 계속 의심이 같다. 차라리 '그냥 스릴러다!'라고 선언하면 그냥 그러려니 할 것 같은데... 영화의 엔딩은 결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고집으로 보인다.


영화 속의 몇몇 대사들... (소위 핵심이라고 말하는 철학 수업 시간의 대화) 

"모든 사람이 가장 진실하게 말할 수 있는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대한 이야기는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해답을 갈구합니다. 누가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인지... 하지만 그것을 안다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역사는 어떤 시점에 생성된 확실성이며 그 시점이란 기억의 불완전성이 문서화의 부적절성과 만나는 시점이다." (원본을 보고 직접 번역한 것은 아님)

이것들은 적어도 영화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명제에 대한 (나름대로의)'해답'을 찾고자 했던 것을 아닐까.... 정리하자면 추억은.... 내가 만들어낸 콘텐츠 상품 같은 것. 


이 영화, 불만은 있을 수 있지만 다시 볼만하다. 그래도 제목은 좀.... 아니다.


2. 형(닉 드레이크)이 거기서 왜 나와?

어느 기사에 보면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닉 드레이크의 등장은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의심이 가는 게 그의 유명세는 80년대 중반 이후다. 물론 그때의 뮤지션들이 자라면서 닉 드레이크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70년대 후반에도 팬들이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나는 혹시 이 영화가 그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살로 죽은 '애드리안 핀'이라는 인물은 거의 닉 드레이크 같은 느낌을 준다. 공통점이라곤 캠브리지 대학교, 철학과 문학, 우울증?, 자살 등.. 꼽아보면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A life in a nothern town'에 비하면 훨씬 근접한 오마쥬 혹은 트리뷰트가 아닐까?


그리고 영화에 삽입된 곡인 'Time has told me'의 가사는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말해 주는 듯하다.

So I'll leave the ways that are making me be

What I really don't want to be

Leave the ways that are making me love

What I really don't want to love ('Time has told me' 가사 중, Nick Drake)


3. 아주 오래된 편지 한 장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편지'다. 주인공(이기도 하고 화자이기도 한) 할아버지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편지고, 아침마다 만나는 우편배달부와의 장면도 미소가 나오게 한다. '편지'가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 구성 상의 복선이겠지만, 편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장면 장면들이 좋기만 하다.


내게도 여태껏 보관하고 있는 편지 한 장이 있다. 1989년 2월 2일에 쓰인 편지. 그 날이 목요일이니까 아마 받은 날도 그날 일 것이다. 그 편지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청춘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그 누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고... 등등. 대개는 오지랖 넓은 제삼자가 끼어들기 마련이어서 '걔는 너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라던가, '너하고 걔는 어울리지 않아', 혹은 '내가 볼 때 너는 누구를 사랑하는 게 분명해'라면서 스스로는 보람찬 사랑의 전령으로 생각하는 관전자가 있다.


한 때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 좋아했다고 믿었다. 결코 흔하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었고, 길고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별의 과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불확실하다. 먼 훗날 술자리에 놓인 이야기가 되어 몇 번이고 고쳐지고 수정되어 남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때 어떻게 되었으면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후회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 확실한 것은 그것뿐. 추억의 불순한 유혹에 빠지기보다는,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좋다. 감정은 이제 어딘가에 넣어 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Five Leaves Left Album Cover (Nick Drake, 1969)

Time has told me (by Nick Drake): 4분 27초

작사/작곡: Nick Drake

1969년 7월 3일에 발매된 닉 드레이크(Nick Drake)의 첫 번째 앨범 'Five Leaves Left'이 첫 번째 수록곡. 나중에 재발매 앨범에서는 곡의 순서가 바뀌었는지, 내라 가진 앨범의 리스트에는 'Time has told me'가 9 번째다.

앨범 제목과 우연히 맞아떨어지는지... 닉 드레이크는 이 앨범 발매 후 5년 후에 죽었다.

사후에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걸작으로 '세상을 바꾼 앨범',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가장 위대한 앨범' 등등의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앨범이다. 포크음악에 현악을 추가한 음악 스타일을 창조한 앨범으로 평가된다.

이전에 '뒤끝 있어요'란 글과 ''Life in an nothern town'이 닉 드레이크와 연관된 곡과 글들이다.

가사들은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느낌인데, 소리는 살짝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처음 들을 때는 극단적으로 장송곡을 듣는 듯한 기분이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Way to blue'같은 곡이 대표적인데, 배경으로 전개되는 반복적인 현악기 소리는 우울함의 극단을 들려준다.

아주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 둔다면, 그와 그의 음악이 사후에 명성을 얻은 이유는 그의 특별한 삶과 죽음 때문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계속 들으면서 충분히 숙성이 되어야 비로소 그 참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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