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쓰기...
여러모로 망가진 현재의 '나'를 추스르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다시 살펴보다 보니, 이거 참... 꽤 괜찮은 사람이 있었더군요. 좀 더 자극적으로 '사라진 나'라고 제목을 쓰려다 쓸데없이 어그로 끄는 것 같아서 조금 고쳤습니다.
잠깐 글 쓰기에 대한 개인 약력을 정리해 보니...
처음 글이라고 할만한 걸 쓰기 시작한 게 고등학생 때(아마 1학년 말쯤)였던 것 같네요. 숙제로 하는 일기가 아닌 내가 써야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한 진짜 일기... 제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기획한 일 중에서는 가장 오래 한 것 같습니다.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이 일기는 군대 제대까지 약 7년 정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었습니다. 요즘은 서평이니 리뷰니 이런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이건 대학교에 입학해서 시작한 것 같습니다. 노트에 직접 필기를 했었고... 이 노트가 2권 정도... 한 권은 친구에게 주었고, 다른 한 권은 꽤 오래 갖고 있다가 버려진 듯합니다.
1997년인가 1998년인가에는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글쓰기 전용이었는데, 여기에는 일기, 독후감 그리고 창작물까지... 제법 빼곡하게 채워나갔습니다. 이 홈페이지는 결혼과 함께 버려졌었고요. 한동안 나의 글쓰기는 거의 일하는 데에만 집중이 되었었다가, 2005년 즈음... 블로그를 했었고, 암튼 직업 때문이든 뭐든, 페이스북, 싸이월드, 알라딘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새로 나온 매체를 통해 계속 시도는 했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지나간 것들 다시 들추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 뭔가 유치하고 감정 과잉 등등을 느끼는데... 2012년 만든 페이스북 그룹(15 minutes)에는 괜찮은 것들이 많았네요.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들도 있고... 그때 서점 만들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 였는데 어찌 보면 참 많이 앞서 나갔었네요. 그중에 한 글이 마음에 들어서 다시 살려 둡니다. (글을 제법 썼었더군요. 과거의 나는...)
이런 글쓰기... (2012년 6월 4일)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남자의 자리'란 제목이 눈의 띄어서 그냥 집어 들었습니다.
(제가 책을 고르는 방식이 좀 그렇습니다. 조금 펼쳐서 읽어보고 그런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저 제목 보고... 저자 보고... 맘에 들면 삽니다. 실패하더라도... 그 편이 더 좋습니다.)
그렇게 두껍지 않은 책이라서.... 반나절 만에 다 읽었습니다.
뭐랄까... 소설과 실화의 중간쯤? 어떤 이는 소설이라 하지만...
작가인 아니 에르노라는 사람의 글쓰기 방식 자체가... 겪었던 이야기를 글로 쓴다고 하네요.
처음 겪는 경험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임종 후... 정리해 나간 아버지의 삶....
작가도 지극히 객관적이고자 노력했다고 했고,
실제로 글들은 아주 건조하게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기술해 나갑니다.
일면 매우 지루하고, 아무런 느낌도 감흥도 없는..... 그렇게 어느새 책은 끝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제의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 (125쪽)
지금까지 읽어왔던 124쪽의 모든 글들은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이 문장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그리고 그 시각은 글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사람이 아니라...
그 글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로 향합니다.
아프지만 치열한 작가의 표정과 떨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쓸까요?'
나 스스로에게도 가끔씩 질문하곤 합니다. 무엇 때문에 쓰려하지?
혹자는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권하기는 쉽지 않은 책입니다만....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어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방어적이고 숨을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무언가를 써야만 했던....
'이 글을 써가는 내내 난 학생들의 과제물을 수정하고, 논술문의 모델들을 제시해 주곤 했다.
왜냐면 난 그런 일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의 유희는 내게 사치스러운 삶이 주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준다.
비현실감, 울고 싶은 심정 같은 것 말이다.' (127쪽 ~ 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