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가운 록홍이 되어야지!
각 잡고 읽는 글을 좋아하지만, - 때때로 그렇지도 않지만 - 나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깊지 않고 조악할 정도로 얕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엄마가 빨래통에 넣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 아, 왜 빨았어~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나만의 알록달록 잠옷을 입고, 귤을 까서 먹으며 TV를 보다가 이내 지루해져 잠깐 핸드폰을 들어 가볍게 읽고 " 저 여자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읽는 것도 시간 아깝다. " 란 말을 하며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다가 말이지.
사람마다 고유한 성격이란 것이 있을 테지만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환경에 내가 처해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인격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변함없이 기대해주며 그 기대감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일관되게 행동하게 해 준다.
적어도 그녀 앞에서는. 하지만 분명 그것은 가식이 아니고 -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그것은 정말 나 그 자체다.
한 주 내내 번아웃으로 심신이 지쳐있었던 찰나의 순간에도 애정 하는 공간(로키홈 인스타그램)에서 어김없이 나의 이야기를 소소히 적어 내려 가며 따뜻한 댓글들을 받고 있었다. 마치 전날 밤 라면을 먹고 자서 새벽에 물을 먹어도 갈증이 나는 새벽녘의 그 느낌처럼, 가끔은 달콤한 위로가 갈증이 날 때도 있어 자꾸 찾게 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악플이 없는 공간이라 마음이 따뜻하고 그 온기도 지속되는 편인데.
유독 빠르게 지나치지 못하고 무시하고 있던 바깥소리 - 이를테면, 저기 저 놀이터 건너편 근처에서 공사하는 소리, 개 짖는 소리? ㅎㅎ 아이들이 외치는데 그 소리가 뭔지 기억이 안나다. 그런 곁을 잘 안 내주는 소리가 잘 들려오면서 약간 멍해지면서 그 문장을 끌어안게 되는 댓글이 있다. 보통 그녀가 그런 댓글을 나에게 선사하는데, 뭉클하게 말이야.
" (생략) 저는 늘 로키님을 보면서 많이 배워요. 부지런하고 열정적이고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배려심 깊고...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배우고 싶은 건 말 예쁘게 하기! 인스타계의 차홍 같은 존재예요 로키님!!(생략) "
한참을 끌어안고 있던 문장 속에 차홍?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적어도 그녀의 생각으로는 이 네모 공간 안에서는 차홍 같은 존재라는데,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으면 친구와의 비밀일기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느낌이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다녔을 법한 도로에 있는 간판에서 이름은 많이 보았다. 차홍 아르더. 헤어디자이너로 유명한 사람임은 알았는데 차홍이 어떻게 미소 짓고 어떤 화법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지가 궁금해졌다.
유튜브에 차홍을 검색하니 마리텔이 나오고 뒤에 딸려오는 수식어는 " 긍정 " 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 영상을 보면 답을 알겠지란 생각에 큰 베개를 작은 베개 뒤에 다시 포개 놓고 익숙해져 버린 자세를 고치느라 반대편으로 몸을 돌아 누웠다.
차홍은 1인 방송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마리텔에 나와 헤어 고민을 듣고 즉흥적으로 해결해주는 과정을 담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높아지는 옥타브 8도에서 솔~라 그 사이 정도랄까? 시는 아니어서 쨍그랑거리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도 아니고 중저음은 더더욱 아닌 음색으로 환한 미소를 시종일관 띠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출연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단 칭찬부터 하고 보는데 동시에 방송을 지켜보는 대중들의 다듬어지지 않는 날것의 실시간 채팅이 차홍의 매력을 더 살려주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진 채 나온 감독에게 " 지금 너무 좋으세요, 얼굴이 상기된 모습이 열심히 일한 모습이고 너무 보기 좋은데요, 어떤 부분이 고민이세요? "라고 살갑게 던지자 감독은 " 보이는 부분이 다 고민이에요~ " 라며 더 이상 받아칠 수 없는 대사를 남긴다. 하지만 차홍 그녀는 " 왜요, 잘생기셨어요~ 이태리 남자처럼 얼굴도 기시고 머리도 피구왕 통키처럼 솟아서 귀엽고 안경도 지적이고 귀엽고요, 이 수염도 조선시대 임꺽정 이런 사람들처럼 미니 임꺽정 같으시고요 " 이때 채팅창은 얼굴과 실명 공개가 안 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대사로 둥둥 떠다닌다. 보고 있으니 나도 입가에 미소가 돌고 있었다. 감독의 진짜 고민은 바로 탈모인데 끝 부분 머리를 귀엽게 살려오셨다. (방금 나 귀여운 거라고 하는 거 보니 록홍이 될 자질이 있어 보인다.) 차홍은 " 어머, 굉장히 귀여운 파인애플처럼 잘 살아있어요. 너무 매력적이세요! 파인애플도 위에만 머리가 있어요 파인애플 귀엽고 멋있잖아요. " 듣다 못한 감독이 " 파인애플이 뭐가 멋있냐며 " 멋쩍은 웃음으로 참다 참다 작은 폭발을 하자 " 파인애플 보시면요 교차가 돼있어요. 사과랑 배는 그냥이잖아요 근데 파인애플은 무늬가 있어요 그래서 고급 과일이에요 비싸서 함부로 못 사 먹어요 파인애플은요.. "
영상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그녀의 살갑고 예쁜 화법의 매력을 알게 해 줬고
은근하게 묘하게 설득하게 되는 힘도 느낄 수 있었다. 이쯤 되니 나에게 " 인스타계의 차홍 같은 존재예요 " 란 말을 던져주고 간 그녀가 나의 차홍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민망하고 머쓱한 느낌이 불편하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민망하거나 머쓱타드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이야기를 할 때 논리에 맞지 않더라도 조금은 부족해도 일단은 인정해주고 긍정해주는 사람이 좋았다. 말끝마다 ' 아니 그건 아니고, 그건 아닌 것 같아. ' 부정의 말로 막혀버리면 다음번에는 찾지 않는 것처럼 아니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네모 공간 밖에서의 나는 차홍같은 사람인가?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아보카도가 샐러드 해 먹기에 알맞게 익은 건지 도통 확인이 어려워서 아침 내내 어딘가가 불편했고 지금도 나는 글을 쓰지만 저쪽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류에게 미안한 감정을 오히려 툴툴거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말과 다르게 한숨을 고르고 머릿속에 있는 글자들을 올바르게 배열하고 정돈한 뒤 글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더없이 알 것 같다. 말과 행동이 형편없는 불량품이기 때문에 말이 나의 진정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는 몰락의 에티카 책의 한 구절처럼 나의 진정성은 사실 글로서야 표현되는 살가운 록홍이 맞지 않나라며. 글을 다 쓰고 나가서는 고마운 마음을 부끄러워 괜히 툴툴거리는 게 아니라 멋있는 파인애플 같다며 류를 칭찬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