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견문각지라는 말이 있다. 보고 듣고 깨달아서 안다는 것. 즉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는 경험이 주는 힘이 엄청나다고 믿는 사람이다. 대학생 때 국문학과와 교육학과를 이중으로 전공하면서 대안학교의 선생님이 되려고 했다. 학과 수업은 열심이었지만 2001년도만 해도 대안학교가 많이 생소할 때라 현장의 이야기나 실제 대안학교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실체를 알지 못하니 선택을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다 교생실습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고 대부분 자신의 모교로 신청을 많이 하던 때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경남 산청의 간디 대안학교로 전화를 했다. 최초의 대안학교이자 몇 안되는 우리나라에서 학적으로 인정을 받는 대안학교였기 때문에 혹시 교생을 받는지 문의를 했다. 아직까지 한번도 교생을 받아 본 적 없다는 교장선생님을 설득하여 이 학교 최초로 교생실습을 하게 됐다. 대부분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가는 교생실습 첫날과는 달리 운동화를 신고 굽이굽이 산 속을 걷고 걸어서 간디학교를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이들, 선생님과 먹고 자고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직접 배운 대안학교는 책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책이나 언론에서 보여지던 대안학교의 가치나 의미를 벗어나 생동하는 아이들이 보여주던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들은 내가 직접 대안학교를 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권의 책을 읽느니 만리 길을 떠나는 게 낫고 만리길을 떠나는 것보다는 무수한 사람을 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경험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그렇다면 비즈니스맨에게 경험은 왜 중요할까
이렇게 경험은 선택과 판단을 돕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단순히 수동적인 직무를 실행할 때에도 그 속에는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러니 능동적이고 스스로 자기 주도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시기에는 얼마나 많은 선택지들이 펼쳐질까. 업무에 있어서도 그렇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책임을 져야하는 수많은 판단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한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모르고 내 감정만 우선이던 서툴던 첫 사랑보다 서로 투닥투닥 차고 차이면서 눈물 한 바탕 쏟고 이별의 아픔을 안 뒤에 만난 성숙했던 연애를.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보이는 좋은 사람, 만들어졌던 내 사람의 선택 기준들. 그래서 더 나음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경험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경험은 우리에게 현명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사계절에 맞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제철 먹거리를 팔아본 쇼핑호스트는 다음 해가 되었을 때 지금의 계절에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식품을 보여주어야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린다는 것을 경험치로 안다. 한 여름 배추 값은 주춤하지만,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배추 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걸 해마다의 김치 판매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장만하시라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계약재배를 해봤거나 매년 김장을 담근 사람, 여름김치도 먹어보고 겨울 김치도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값이 비싸도 한 여름 배추보다는 날씨가 추워진 뒤 고랭지 배추로 담근 게 더 맛있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이런 경험들을 종합하여 상품의 가치와 가격의 합리성을 판단하고 매출로 이끌어낸다.
세일즈 스피치도 경험을 기반으로 강화된다.
창업을 하기 전 왜 많은 사람들이 대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공을 기르겠는가. 이런 경험을 한다는 건 시장의 소비자 니즈를 직접 파악하고 나의 분야의 앞선 경쟁자가 되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방가전 쿠쿠 밥솥을 자주 방송하던 때 일이다. 공항에서 외국인들이 하나씩 사들고 갈 정도로 인기템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쿠쿠를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이 상품의 매력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듣고 싶었다. 아예 쿠쿠 담당자에게 부탁해서 <쿠쿠 소비자 모임>에 참여했다. 쇼핑호스트라는 걸 숨기고 소비자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실제 제품을 오래 써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단점과 제품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들을 배웠다. 쿠쿠로 밥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 모임은 체험단 혜택까지 이뤄지고 있어서 매년 치열하게 선발하는 과정까지 있었다. 쿠쿠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빅데이터의 산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경쟁사 제품과의 차별점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소비자 입장에서의 (특히 충성고객) 경험은 개발자나 회사 입장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과 함께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기에 훨씬 비즈니스의 힘이 있고 세일즈 스피치의 힘이 생긴다.
경험은 돈이 된다.
여기서 비즈니스의 힘이라는 것은 곧 돈이 된다는 뜻이다. 경험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비즈니스의 세계이다. 원하는 목표를 위해 그동안 내가 축적해 온 경험들이 쌓여서 도움이 되고 결정적인 마스터키가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성공적인 매출이 될 수도 있고 효과적인 마케팅 홍보가 될 수도 있고 크고 작은 창업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길잡이가 되어 줄 경험을 열심히 쌓아야 한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다양한 경험들이 각각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본인 손에 경험이 있어도 그것이 비즈니스로 돈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결정적 계기가 오기 까지는 마치 경험들은 각각의 구슬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구슬들이 꿰어지면서 나만의 다이아몬드가 되고 비즈니스 파워가 된다.
세일즈 스피치도 돈이 된다
목동의 유명한 빵집은 다른 빵집에는 없는 독특한 레시피로 만든 식빵으로 유명해졌다. 여기에 멀리서도 보일만큼 독특한 인테리어도 빵집을 알리는데 한 몫 했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은 젊을 때 미술, 패션 쪽 일을 했고 이때의 감각으로 인테리어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국 각지의 맛집을 다니며 길러온 미각은 그녀로 하여금 독특한 레시피를 도전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온 성공 뒤에는 이렇게 많은 경험들이 있었다. 나 역시 지금까지 4000회 가까이 방송을 하면서 수천 개의 상품을 판매했다. 13번의 계절을 지나면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며 얻는 경험이 다음 상품의 매출 견인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았다. 캘리포니아 산 호두를 방송하면서 쌓인 노하우로 캘리포니아 산 체리나 오렌지 방송 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보카도 원물 방송과 손질이 된 냉동 아보카도 방송을 거치고 아보카도 오일을 판매하니까 그동안 생소했던 아보카도의 마케팅 포인트가 비로소 보이기도 했다. 쇼핑호스트와 별개로 공부해 온 채소소믈리에 활동을 하면서 유기농 제품을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쇼핑호스트 중에서도 유기농 상품을 많이 방송하게 됐다. 새로운 먹거리는 새로운 주방용품과도 연결되고 새로운 건강보조식품의 개발과도 연결된다.
또 책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마음먹으면서 준비 해온 나만의 취업 노트, 홈쇼핑 입사 후 전국 각지의 많은 상품들을 만나고 직접 판매한 경험, 쇼핑호스트로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생방송에서 얻게 된 노하우들, 회사 안팎에서 이뤄진 멘토링의 시간은 각각 떨어져 있는 경험들로 보였다. 그러다 책을 집필하면서 그동안의 경험이 하나로 꿰어지고 한 권의 책이 나오는 데에 집합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책은 나를 또다른 비즈니스의 세계로 이끌었다.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들을 하고 더 다양한 작업을 하게 했다. 홈쇼핑에서 많이 방송되는 이롬 생식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홈쇼핑을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었다. 황성주 박사가 자신을 찾아오는 많은 암 말기 환자들을 접하면서 그들을 위한 식이요법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제대로 씹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영양을 골고루 배합하는 방법을 연구하다보니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제품이 완성되고 이후 홈쇼핑 방송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음식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경험들이 쌓여 새로운 제품이 되기도 한다. 이런 각각의 경험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새로운 상품으로 거듭나고 돈이 되는 경우들은 수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