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도하는 것을 시도 중이다.
이건 나에게 꽤 큰 시도다.
왜냐면, 나는 최근 그 어떤 시도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10월이다.�
벌써 얼리버드 세일이라며 2026년 다이어리가 쏟아지고,
“이제 월요일도 15번밖에 안 남았다”며 허무함을 느끼는 때.
1월의 담대하고 삶에 대한 애정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이던 때와 달리,
자책, 후회, 미련, 허무함이 공존하는… 아주 기분 나쁜 때다.
그러면서도 날은 선선해지고 기분은 좋아지고,
어디론가 계속 떠나고 싶고, 밥맛은 미친 듯이 돌고,
곧 캐럴을 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어버린다.
그 더러운 기분과 기분 좋은 설렘이 공존하는 바로 이 10월.
나는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게 된다.
약간의 죄책감을 쥐고 살 만한 이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이미 늦었지 뭐…” 하며, 남은 두 달도 지금처럼 흘려보내게 되는.
그래서, 나의 네 번째 시도는 ‘시도를 시도하는 것’이다.
�하나. 브런치를 시도한다.
혼자 불규칙하게 끄적이던 글들을
매주 정해진 시간에 연재하려 하니 솔직히 부담이다.
연재는 ‘구독자와의 약속’이라며 시간을 꼭 지켜달라는데…
저번 주 처음으로 밀렸다. 죄송.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정도의 연휴는 처음이라 신이 나서.
오히려 이런 ‘강제적인 글쓰기’가 나를 탐구하게 하고
멈춰 있지 않게 하는 장치가 될 것 같아 시작했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꼴랑 내 얘기 하나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마감에 시달리는 수많은 작가님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달까.
소재도 없고…
(악뮤의 ‘소재’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얼마나 쓸 게 없었으면 ‘시도를 시도한다’는 시도를 꺼내겠는가.)
�둘. 사람들과의 교류를 다시 시도한다.
알바, 집, 알바, 집.
보는 사람만 보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다 보니
인간관계가 고이는 기분이 들었다.
대학 시절 친구가 나를 “얜 진짜 인싸야” 소개할 만큼 바쁘게 살던 내가,
이제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피하고 있었다.
새로운 학원에서 연기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사교적이라 자부하던 내가
동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더라.
알바에선 돈만, 학원에선 연기만, 집에선 잠만.
장소와 사람에 따라 얻으려는 것이 정확하고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선들이 나를 참 별로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지금 많이 조급하구나.’ 요즘엔 다시 조금씩 마음을 열어보는 중이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과 추억팔이도 하고,
연기하는 사람들과 시답지 않은 대화들도 나누고,
여기저기 여행 약속도 잡아본다.
“나는 아직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야.”
그렇게 나를 채찍질하던 손에서 채찍을 잠시 내려놓고 ,
‘이래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셋. 숏츠와 멀어지기를 시도한다.
요즘은 숏츠를 한 번 터치했다간 세 시간 순삭이다.
양치할 때도, 샤워할 때도, 집 안을 이동할 때도,
한 손엔 늘 스마트폰이 있다.
모든 순간 중 ‘정적’을 참기가 참 힘들어진다.
앞서 ‘침묵을 시도한다’는 브런치 글도 썼지만,
시도는 잘 안된다. ( 그래서 계속 시도하는 거다… ^^)
그래서 마인드도 바꿔봤다.
‘아예 안 보기’ 대신 ‘보긴 보는데 대신 최소 하나는 연기 관련 영상 보기’.
그러면 덜 죄책감 들고,
덕분에 알고리즘도 점점 연기 영상으로 도배된다.
그럼 적어도 연기연습할 때 아까 봤던 영상 한번 적용해 보고, 오디션도 하나 넣어보게 되더라.
어쩌면 이게 요즘 내 방식의 자기 계발일지도.
결국 ‘숏츠와 멀어지기’가 시도지만,
그게 안 된다면
‘도움 되는 숏츠랑 가까워지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사실, 시도를 시도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이걸 쓰면서도 “내가 뭘 시도했더라…” 계속 고민했다.
겨우 긁어모은 게 이 정도다.
그래도 ‘시도할 것들이 아직 나에게 많구나’ 싶어
다시 흥미가 생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결국 나의 또 다른 시도 중 하나다.
나의 작은 시도들이
결국 나를 더 크게 만드는 시도로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