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근에서 만난 고요한 정취
집 앞 나뭇가지에도 새순이 돋는 걸 보니 정말 겨울이 물러나는 듯하다. 허나 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폭포는 말라있고, 설상가상으로 대기 질은 최악인 한국의 3월은 풍경사진에 그리 좋은 계절이 아니기에, 완전히 따사로운 봄이 올 때까지 겨울 촬영 이야기를 더 풀어보고 싶다.
사실상 겨울도 눈이 오지 않는 한 풍경사진의 요소가 많지 않다. 건조한 대기에, 갈색이나 소나무 바늘을 제외한 모든 자연이 완전히 색을 잃는다. 소나무마저 아주 초록초록하진 않다. 마치 3~4개월의 동면을 하듯, 반도의 자연은 무성함으로부터 '잠시 멈춤' 상태가 된다. 헐벗은 땅은 언제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리고 지나치게 눈부신 햇빛을 동반하는데 이는 사진작가로는 가장 원치 않는 컨디션에 가깝다. 영하의 온도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 내 몸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나는 겨울의 자연을 피해있기보다, 이들을 끌어안아보려 시도했다. 솔직히 겨울 촬영에는 불리한 요소만 있는 게 아니다. 일출 시각이 다른 계절보다 늦기 때문에 해돋이를 찍으러 가기 전에 상대적으로 좀 더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그래서 이날 아침엔 한강변의 하남으로 떠났다. 강둑을 찾아가던 이날, 주변은 아주 어둑어둑했고 기온은 영하 15도였으며 30분 이후 일출이 예정되어 있었다. 땅에는 여름내 발목까지 오던 초록 잔디 대신 평평한 갈색과 딱딱한 돌뿐, 하늘엔 별이 몇 개 떠있다. 조용하다. 춥다.
냉랭한 이 길 위의 나는 새벽잠에서 깬 고라니를 의도치 않게 놀래켰다. 뛰어가는 그 녀석 때문에 나도 놀라 뛰어올랐다. 궁금해진다. 더 이상 어떤 우연한 만남의 기회가 있을까? 큰 키의 부들개비와 나무들, 얼어붙은 웅덩이뿐인 겨울의 밀림에서 말이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쓰러져있는 나무 한 그루를 찾는다. 또 한 번 죽어있는 듯한 기생식물에 뒤덮인 이 나무, 멋진 피사체가 될 수 있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이 나무가 자신을 드러내는 동안 카메라를 꺼내고, 태양이 내가 원하는 각도에서 비춰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사진 1. 나의 얼어버린 뺨이 태양빛을 느끼기도 전에, 산꼭대기의 힘찬 아침놀이 뒷배경의 나무와 부들개지에 슬쩍 불을 놓는다. 기대되는 아침!
사진 2. 여기, 내 앞쪽 지면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나무의 삶을 포착해 보았다. 사진에서 특별히 두 개의 요소를 강조하고 싶어서 대비를 시도해 봤는데, 뭔지 알아보시겠어요?
사진 3. 이제 내가 왜 이 쓰러진 나무에 이끌렸는지 알 수 있다. 죽어버린 나무기둥을 따라 기생식물이 자라나는 동안 만들어진 가운데 빛의 관문이 바로 그것이다! 왼 편의 산은 태양 쪽으로 시선을 끌어가는 얼어붙은 개울을 경계로, 오른편 아랫부분의 그림자에 의해 반영되며 흥미를 더하고 있다. 가끔 자연은 이렇게 스스로 강력한 구성을 만들어낸다!
사진 4. 이 날 아침 마지막 촬영본, 대비 구조와 함께 서로 보완되는 색상과 형상을 빌어 좀 더 심플한 구성을 해보았다.
얼어서 빨갛고 딱딱해진 손가락 발가락과 함께, 이제는 차로 돌아가야 할 시간. 긴 시간의 운전은 남아있지만 최소한 따뜻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친근한 종류의 풍경사진이었다. 이제 장소를 바꿔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풍경사진을 찍을 차례다. 하나의 자연요소를 주인공으로 두고, 마치 인물사진처럼 대우하며 찍는 방법인데 나는 이를 '자연의 초상사진(nature portrait)'이라고 이름 붙였다.(한국말로 번역한 명칭이 썩 맘에 들진 않는다...)
목적지는 삼성산이다. 바늘 모양의 바위들이 모여선 봉이라고 묘사할 수 있겠다. 여기서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지, 바윗면에 고리도 보인다. 나는 그 바위 중 마지막 바늘에 올라서서 - 지면으로부터는 10미터 정도 높이다 - 바위의 V자 모양 틈에서 자라고 있는 한 소나무를 본다.
이 나무는 눈발이 가볍게 날리던 어느 저녁에 발견했다. 좀 더 기다렸다가 일몰 시간이 되니, 예정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좁은 바위 위에 위태로운 자세로 올라선 채 그 광경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눈은 저 멀리 능선을 가리고, 커다랗고 무성한 눈발은 나와 나의 피사체 사이에서 떠내려온다. 황홀한 순간. 이 멈출 수 없는,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장면은 계속되었다, 빛이 너무 적어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까지. 마침내 나의 감각을 되찾았을 때 주위는 이미 꽤나 어두워져 있었기에, 안전히 내려올 채비를 빠르게 해야만 했다.
사진 5. 느리게 어두워지는 하늘은 이 시간이면 전형적인 파란빛을 드러낸다. 이 차가운 톤이 뿜어내는 밤의 분위기는 내게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준다. 마치 수수께끼 같은 낡은 지도가 있어야만 찾아올 수 있는 어떤 비밀 정원의 해 질 녘 풍경 같다.
밤은 지나가고 또 다른 날이 우리의 삶으로 곧 다가온다. 햇빛은 곧 얼어있는 땅에 온기를 가져다줄 것이다. 나는 또 다른 눈 오는 저녁, 똑같은 바늘바위 위에 오른다. 이 날은 정말 춥고 바람은 더 불었지만, 바위 위에서는 편안했다. 내가 원하는 빛이 와줄 것을 알았다.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었다. 기다리면서 나의 발아래, 꽤 길게 펼쳐져있는 낙하거리는 애써 잊기로 했다. 태양이 스스로를 구름 덩어리 위로, 또 지평선 위로 들어 올릴 때까지 계속 기다린다...
사진 6. 짠, 놀라운 측광이 소나무와 함께 바위 친구들을 절묘하게 조명하고 있다. 말이 필요 없다. 오른 편의 햇빛과 왼 편의 찬 바람을 느껴보자. 장엄한 아침을 기원하며 자연을 느끼자.
이때 나는 너무나 적절한 위치에 적절하게 자리 잡은 이 나무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나의 아내와 장인은 여기서 다른 상상을 이끌어냈다. 아내는 나무의 가장 오른쪽 가지에서 용의 머리를, 장인은 나무의 전체적인 형상에서 한 마리 새의 뒷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있다. 이 마법 같은 나무에서 여러분 또한 자신만의 시각적인 해석을 가지시길 바란다.
추운 날씨는 분명 반갑지 않지만, 나의 기억에 오래 기억되는 따스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설명을 더 하자면 아주 길어질 것 같아, 겨울이 가진 그 이중성과 아름다움을 담아냈다고 생각하는 사진 시리즈를 아래 남겨본다.
사진 7. 음력 설날. 일출 이후 두 시간 정도가 지났고, 내리던 눈이 방금 그쳤다.
사진 8. 처가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봤는데, 자연은 내게 이런 선물을 줬다.
사진 9. 새로운 해, 새로운 날, 새로운 새벽... 그리고 나는 기분이 좋다. It’s a new year, it’s a new day, it’s new dawn… and I’m feeling good.(영국 밴드 Muse의 노래 'feeling good'의 썰렁한 패러디...)
저의 겨울 사진 도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헐벗은 계절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흥미롭게 사진으로써 보여드리고자 했는데, 그 결과를 여러분도 즐겁게 봐주셨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겨울에 훨씬 많은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는 작업 또한 제겐 도전이었습니다. 다른 사진도 보고 싶으시다면 저의 소셜미디어를 방문해 주세요! 맨 아래 제 인스타그램의 링크가 있습니다.
제 사진을 보고 느끼신 바를 자유롭게 댓글로 남겨주시고, 등산이나 사진과 관련한 제안이 있으시다면 아낌없이 공유해 주셔도 좋겠어요. 함께 등산을 갈 수도 있겠지요?
그럼 다음번 겨울 여행에서 또 뵐게요.
아 비앙또! (À bientôt! : “또 만나요!”를 뜻하는 프랑스어)
*원고 번역 및 편집 : 김혜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저의 풍경사진 촬영 여정에 함께 하실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에도 더 많은 한국의 풍경 사진이 담겨있으니 많이 많이 들러서 감상해 주세요! 홈페이지 호맹포토의 Blog에는 다양한 풍경사진 촬영기가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작성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