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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Aug 11. 2020

비가 오면


 우산을 써도 어깨나 종아리로 묻어나는 빗물, 미끌거리는 대리석 바닥을 조심조심 걸어가야 하는 비 오는 날은 반갑지 않다. 그 상황에 버스라도 타야 하는 사정이 생기면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우산을 접고 버스로 옮겨 타는 찰나의 순간에 맞는 빗물도, 접은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내 옷이나 다리에 묻어버리는 상황도 모두 불쾌하다. 내가 묻힌 빗물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흘리는 빗물은 얼마나 더 찝찝한지.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온다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끈적끈적한 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발바닥의 감촉은 서해 바다의 갯벌을 밟는듯하다. 또, 누군가 씹다 뱉은 껌을 밟아 신발 바닥에서 찌익- 늘어나 난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이러다가 결국엔 발이 바닥으로 박혀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집마저 물속에 잠기기 전에 습기들을 쫙쫙 빨아 당겨야 한다. 에어컨이나 제습기를 돌려놓고 욕실로 향한다.  빗물로 흥건한 발의 전체는 결코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발날로만 어그 적거리며 걸어간다. 따뜻한 물로 종아리에 튀어 있던 작은 흙 알갱이를 떨어뜨리고 나면 얼었던 살 표면에 핏기가 돌며 사르르 녹아내린다. 빗물로 불어버린 두 발을 따뜻한 물로 번갈아 부비적거리면 쪼글쪼글 접혔던 발이 아기 발처럼 탱글 하게 살아난다.  



 뿌연 습기가 거울을 덮어버린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면 집 공기가 달라져 있다. 살짝 추워진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지만 이내 적응되는 뽀송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쾌적해진 우리는 그제야 비 오는 날의 낭만이 보인다. 창틀 샷시에 쇳소리를 내며 똑똑거리는 리듬,  창문에 맺혔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줄기, 은은한 조명을 더 분위기 있게 만드는 어둑한 하늘, 그 아래 알록달록한 우산을 들고 빗물 고인 웅덩이만 찾아다니며 참방 거리는 아이의 웃음까지.


 비가 오면 내게 닿았던 빗방울들의 방향을 따라 내 시선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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