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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Aug 18. 2020

그래도 견뎌내는 것들

식물


 집에 있던 식물들이 하나, 둘 맥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긴 장마 탓이 분명하다. 더위보다 습기에 더 취약한 아이들이라 장마가 길어질수록 불안 불안했다. 해 뜨는 날도 반짝 손에 꼽을 정도였고 습기를 가득 머금은 날씨에 지칠 만도 했지. 과습 되지 않게 통풍에 신경 쓰며 아이들이 잘 견뎌내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제일 먼저 간 아이는 선인장이다. 데려온 지 고작 2달. 키우기 쉬울 거라 생각하고 처음으로 선인장을 데려왔다. 거실 한편에 두고 귀여움 뽐내는 선인장 무리들은 보며 두기만 해도 인테리어가 되어 뿌듯했다. 빳빳하고 따끔해 보이던 선인장은 원래부터 내 집인 마냥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에 물렁거리며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한 대가 그러더니 곧 옆에 있던 다른 대까지 퍼져 손쓸 틈도 없이 선인장 마을은 반토막이 났다.


 코뿔소 스투키도 키우기 쉬운 식물이었다. 15일에 한 번 물을 주고 창가에 두기만 하면 됐다. 공기정화 효과에 전자파 차단까지 막아내던 아이가 습기에 무너졌다. 초록하고 굵직하던 코뿔소 뿔 같던 줄기가 점점 얇아지더니 노란빛을 돌며 쪼그라들었다. 이내 곰팡이가 슬었다.     




 처음 아이의 손에 들려 우리 집에 오게 된 사철나무는 다행히 잘 견뎌내고 있다. 작지만 곧은 줄기를 두 갈래로 쭉 뻗은 나무는 엄지손가락만 한 잎사귀들을 6~7개씩 옹기종기 피어내고 있다. 1년이 넘도록 새싹만 피워낼 뿐 위로 자라지 않고 있는 모습이 꼭 아이와 함께 자라기를 기다리는 모습 같다.



 홍페페는 이름처럼 붉은빛을 도는 가녀린 줄기로 그보다 넓적한 초록 잎사귀를 받치고 섰다. 줄기 자체가 힘 있게 박혀있지는 않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유연함을 뽐낸다. 여유를 가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내공이라는 듯이 그렇게 말린 이파리들을 조금씩 펼쳐낸다.



 가만히 있는 식물들이 말을 건다. 손 쓸 수 없는 것들로 한 풀 꺾여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견뎌내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나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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