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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Nov 08. 2019

퇴사를 망설인 가장 큰 이유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 지 몰라서

글을 쓸 때 남들보다 좋은 소재를 찾고 싶고, 더 잘 쓰고 싶다. 욕심은 끝이 없고 결국 욕망 덩어리로 변한다. 회사를 다닐 때도 똑같았다. 같이 입사한 동기 언니보다 한 발자국 먼저 앞질러 가고 싶었고, 결국 스스로 큰 화를 불러냈다.


분명 모두가 다 성공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뻔히 안다. 나만큼은 예외가 될 거라고 믿었다니. 삶의 주인공은 본인이니까 그렇다 손 쳐도 좀 너무하잖아. 성공의 척도는 때에 따라 달라졌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연봉이었다. 영업을 뛰어서 얼마나 벌었느냐, 어떤 사람들을 모아 왔느냐. 그게 나의 성공의 척도였다.


목표를 향해 일보 전진할 때마다 나는 이보 후퇴했다


입사 하고 네 달밖에 되지 않은 신입사원인데 팀 내에서 인정받는 에이스가 됐다. 서른 명의 팀원 중 매출 순위 2위를 하고 등에 날개가 달렸다. 그 때부터 였을까. 내 주변에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숫자만 보였다. 그래프의 높낮이만 뚫어져라 보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불철주야 친절하게 반응했다.


나의 친절함의 척도가 매출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업자들 사이에서 만만한 사람이 되었다. 커피를 타오라는 둥, 나랑 저녁을 같이 먹자는 둥, 남자가 아닌 여자로 영업을 한다는 건 또 다른 요구를 받아야 하는 걸 몰랐다. 여태껏 그런 사실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우직하게 달리다보면 어딘가에 도달해 있을 줄 알았던 큰 착각

청소년기 때 부터 힘으로도 남자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구를 잘해서 몇 번 마음에 안드는 남자아이의 안경을 멀찍이 날려본 적도 있었고, 달리기를 잘해서 800미터 장거리 달리기로 남자아이의 코를 납짝하게 해 준 경험도 있었다. 이제는 힘으로 백프로 안 된다는 걸 인지했다. 하지만 머리를 쓰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일터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또 달랐다. 일은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는 일이었다. 난 정말 강단 있는 여자니까 잘 하겠지라는 나의 이성과는 달리 마음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분명 목표를 향해 일보 전진하는 건 맞는데 왜 나는 이보 후퇴하는 느낌이 드는 건지 잘 몰랐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 걸까


결혼을 망설인 이유와 퇴사를 망설인 이유가 똑같다. 나의 커리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여기서 돌연 퇴사하게 되어 버리면 나는 일 년도 버티지 못한 신입사원 나부랭이일 뿐이다. 완벽한 경력 없이 나는 또 어디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 와중에 내가 결혼을 해 버린다면, 분명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있을 거라 단언했다. 경력단절 여성이 되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고용 시장'에서 가치는 열 보 후퇴한다. 언제인지 모를 언젠가 아이를 가지게 될 가임기 여성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경력단절 사유로 1위 결혼, 그 다음으로 육아와 임신, 출산을 꼽고 있다. 경력단절 기혼여성 184만 7천 명을 대상으로 퇴사 이유를 조사했더니 결혼이 63만 4천 명, 육아 61만 9천명, 임신·출산이 44만 5천 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나의 남자친구이자 현 남편은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며'을 계속 반문했다. 내가 매번 말했다. '나다움을 잃었어.' 그의 반문에 나는 돌연 머리를 얻어 맞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바로잡는 방법은 너 자신에게 달려있어.'


어찌보면 답을 알고 있었으면서 계속 남에게 답을 강요했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도 성격도 다른데 민주주의처럼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내 삶도 쉽게 결정할 수 있을거라 터부시했다. 민주주의가 제일 이상적이니까 나의 삶도 이상적으로 결정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그것과는 완벽하게 반대였다.


이제 딱 하나의 길로 선택했다


나 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했다. 펜을 들고 일기를 쓸 수 없었다. 친구들과 웃으며 수다 떨 수도 없었다.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끼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나 다운게 뭔지 하나씩 찾다보니 결국 나 답게 살지 못하는 게 두려웠다. 나다운 게 뭘까, 물어보기 시작했을 때 이미 나는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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