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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06. 2019

우리 같이 회사 때려치울까?

신혼부부 자발적 잉여되기

결혼한 지 3개월. 우리 부부는 자발적 잉여가 되기로 결심했다. 먼저 퇴사한 남편은 한 달 동안 수입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에게 퇴사를 논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나를 배웅하는 남편과 하는 이야기의 패턴은 똑같다. "우리 오늘은 몇 시간이나 같이 있을 수 있지?"


째깍째깍 부부가 되었지만 볼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남편이 퇴사하기 전에는 하루 두 시간 정도 보는 것도 많이 보는 거였다.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 여섯 시까지 출근하는 남편은 다섯 시에 퇴근한다. 그리고 집에 오면 여섯 시. 반대로 서울로 출근하는 나는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하고 저녁 여덟 시가 다 돼야 집에 돌아온다. 


함께 저녁을 먹자마자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은 잠자리에 누워야 했다. 연애할 때보다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서로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서로의 생존만 파악하고 우리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거의 매일 밤 시작됐다.


신혼 2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틀에 한번 꼴로 싸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집안일이었다. 빨래통에 옷을 집어넣는 것부터 시작해 누가 설거지를 하느냐. 그리고 식사를 차리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서로 따지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힘들어' 병에 걸린 우리 둘은 누구 하나 집안일을 할 여력이 없었다.


우리가 피 터지게 싸운 4월의 첫날.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내게 말했다. "너랑 소모적인 감정싸움은 그만하고 싶어.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위해선 조금 더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그 순간 우리의 카드값이 내 머릿속을 지나쳤다. 갑자기 현실적으로 변하는 나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한 달만 기다리면 조금씩 보탬이 될 것이라던 그의 말을 그냥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둘이서 돈을 쌓아 둘 만큼 많이 벌면 좋겠지만, 딱 먹고사는 만큼만 법니다.


결혼하고 제일 많이 질문받는 한 가지 "둘이 얼마나 벌어?" 사람들은 부부가 된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를 제일 궁금해한다. 그리고 어디에서 사는지도 궁금해했다. 돈을 벌고 그 돈을 모아서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가는 것. 또 다음 단계를 설계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아무도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없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서글펐다. 함께 사랑을 통해 발전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고작 돈 몇 푼을 벌겠다고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조각내고 있었다. 


돈은 많이 모았지만 마음이 가난했다. 가장 큰 가난은 관계의 빈곤이라 생각한다. 관계가 빈곤해질수록 서로를 사유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13년의 연애 기간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났다. 그 시간에는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집에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치워야 하고,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해야 하며 빨래를 널어야 했다. 그렇게 가난해졌다.


지금까지 자유의 뜻을 오해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돈으로부터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목표 지점에 도달하려는 노력보다는 타인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머리를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오늘은 한 시간 볼 수 있겠다."는 말을 한 그 날, 남편이 말했다.

<우리 같이 자발적 잉여인간이 돼보자. 잉여에서 프리랜서로 환골탈태하는 그날이 곧 올 거야>


이성적인 인간보단 감성적인 인간이 되자. 우린 그렇게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사는 삶이 긍정적인 방향임을 공감한다. 이와 반대로 스피노자는 감정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고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가끔 감정은 우리를 잘못 인도하고 방황하게 만들지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좌표가 되어 우리에게 걸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우리 부부가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결혼하자는 결단보다 더 어려운 게 지금의 자유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매 순간을 함께 할 삶을 사는 것.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을 자유로운 삶으로 딛고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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