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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Feb 02. 2021

1호선 종점에 사는 사람

오느라 고생했어, 와줘서 고맙고 미안해

15분 정도가 지났나 보다. 열차 소리가 들린다. 그 시간을 기점으로 잠깐 기지개를 켜 본다. 한 시간이 지나고 창문 앞으로 다가가 종점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를 바라본다. 가만히 열차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열차처럼 나의 인생 역시 종점을 향해 가고 있음을, 생각한다. 열차의 종점으로 불리는 곳은 '처음' 생겼던 역이 대부분이다.  인구수가 늘어나면서 역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그렇게 종점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간다. 게다가 열차의 끝이라는 인식 때문에 더욱이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의 퇴근길은 항상 동인천역 급행과 함께였다. 케케묵은 냄새를 가진 1호선을 타고 하루를 마무리하면 이 냄새가 내 냄새는 아닐까 생각도 든다. 정돈되지 않은 엉켜버린 감정이 열차 안에 함께 실어져 내려오는 것 같달까. 


1호선 종점에 사는 기분이란


그 먼 거리를 왕복으로 어떻게 출퇴근하냐던 친구들. 아무렇지 않게 서울에 나가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에게 한 번 인천으로 놀러 오라고 하면 왜 이렇게 미안한 건지. 연남동, 강남, 종로는 한 번 열차를 갈아타게 되면 한 시간 반 정도는 기본으로 걸리는 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인천으로 넘어오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2년 전 결혼식 때, 전철역도 없는 곳에서 결혼했을 때는 친구들에게 어찌나 미안한지. 잠실에서 인천 송도까지 축하해주러 온 친구는 하루 날을 잡고 놀다 가야겠다며 얘기하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열차에 우두커니 나 혼자 서 있는 기분이란.


"오는 데 까지 한두 시간 반 걸린 것 같아."


'미안해. 먼 곳까지 오게 해서...' 종점까지 온 만큼 나에게 의무감 같은 게 생긴다. 이 오래된 지역을 있어 보이게 소개해야 한다는. 그리고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까지.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이라 트렌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한 곳에 주야장천 머무르는 편이다. 하지만, 나를 보러 찾아온 친구를 위해 최대한 적극적으로 공간을 탐색하다 보면 재미있는 걸 발견할 때도 있다. 


퇴근길 기분 나빴던 케케묵은 냄새는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오래된 유형의 것에서 무형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부터 조절해야 했다. 여기는 정말 좋은 곳이라고. 사람들의 오래된 일상이 묻어 나오는, 개개인의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라고.


아홉 시쯤 됐을까.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 아래에서 집에 가려고 주차장에 가면 나 혼자 이 마을을 다 차지했다는 착각에 건물 하나씩을 뜯어본다. 세월이 묻어있는 간판을 보며 생각한다. 이 간판은 언제 떨어질까. 오늘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다음 날 없어져 있을까 봐 아침에 그 자리로 돌아간다. 다행이다. 간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재미있었어 나 또 올게


이 말을 듣고 싶었다. 종점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말을 듣는다는 것. 먼 거리임에도 또 온다는 말. 유독 듣기 좋은 말이다. 남편에게 자랑했다. "또 온데, 정말 또 오겠지?" 친구의 말을 일기장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적어두고 개운하게 잠에 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방문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다짐이 필요하다는 걸 나도 그들도 잘 안다.


나에게 급만남은 사치다. 종점에 살기에 하루 날을 잡고 서울에 나가야 하니까. 그들도 마찬가지다. 큰 마음을 먹고 와야 하니까. 카톡 방에 친한 친구 세 명이 함께 있는 곳. 두 명은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급만남을 하는 그들을 보며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말.


재미있었어. 재미있었지만 멀더라.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삼킨 채 인사를 한다. 공간의 거리가 마치 마음의 거리인 것 같아서 외롭다. 아니라고 한 들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1호선 종점의 사는 사람의 마음이다. 속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10년째 여전히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일뿐이다.


간판이 그대로 있던 것처럼


오래된 간판이 그대로 있는게 다행인 것 같은 게 있다. 그날도 같은 날이었다. 밖으로 나가던 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의 안부를 물으며 덧붙여 할머니의 안부도 물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이모와 함께 내일 아침에 할머니 댁에 간다던 엄마. 나도 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거듭 말했다. 위험하다고, 할머니가 오지 말랬다고. 코로나가 있으니까 그저 위안하다가 갑자기 간판이 떠올랐다. 갑자기 불어 온 강풍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프던 허리가 악화됐음에도 코로나 때문에 병원가는 걸 꺼려하셨단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종점으로 친구들이 놀러오는 게 왜 매일 미안해야 할까. 이 생각을 거듭하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할머니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바쁜데 뭐하러. 미안해. 얼릉가.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할머니를 만나러 갈 수도 없다. 위험하니까 굳이 오지 말라고. 나도 마찬가지로 혈기왕성한 내가 할머니에게 괜한 피해를 끼칠까 보고 싶어도 뵈러 간다고 할 수가 없었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상호작용을 한다. 이탈리아 출신 과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입자들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간에 입자들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 하면서 공간이 새로 탄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다층적인 공간과 시간의 관계를 깨달으며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래. 우리 할머니 역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사람이 너무 붐벼서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을 거야.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좀 오래전에 세워진 역이었는데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공간이 상호작용하면서 더 먼 거리로 밀려나고 있었던 거다.


나에게 할머니네 집과 종점은 닮아있었다


마음의 거리도 이동 거리도 멀다. 이번 설에 할머니를 보러 갈 수 있을까. 코로나 때문에 또 못 보겠지. 다음에 할머니가 또 그러겠지. 고생했다. 미안해. 그 구부정한 허리를 힘주어 펴내며 힘껏 인사하겠지. 1호선 종점에 사는 나는 코로나가 끝나면 꼭. 제일 먼저 또 다른 1호선 종점에 사는 할머니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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