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틈 없이 바쁘던 그때 그 시절
언제든 우린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방비상태로 있을 때 오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면 모든 일상이 파괴된다. 단 한 번도 소중한 것과 이별해 본 적 없는 나에게, 이별과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3년 전 연초 어느 날이었다.
그날 대전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출장을 갔다. 로컬 창업 컨설팅(관광두레 PD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첫 교육을 받는 날이었다. 또 엄마의 수술 날이었다.
KTX를 타고 가는 내내 남편에게 카톡을 남겼다. 가게를 잘 부탁한다는 말, 회의를 잘 진행해 달라는 말. 그리고 중간중간 엄마의 걱정.
무슨 정신으로 대전에 도착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희미한 와중에 오미크론으로 심각하던 상황 때문에 비닐장갑을 끼고 코를 직접 쑤셔 코로나 검사를 하고 강의실에 입장했던 것만 기억이 또렷하다.
강의 시작과 동시에 엄마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분명 깨어날 때가 되었는데 아빠의 연락이 오질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자꾸 전화할 순 없었다. 문자만으로도 내 심정이 느껴졌던 남편이 아빠에게 대신 전화를 걸어주었다.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는 중이라고.
결국 2시간 넘게 지나서야 엄마는 깨어났다.
교육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지나갔다. 티를 내지 않겠다고 모든 동기들에게 말하지 않고 가만히 지내길 며칠. 당시 내 첫인상은 다가가기 어려운 동기였단다. 강의를 들으면서도, 그들과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론 엄마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게다가 심각한 코로나로 병실도 들어갈 수 없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엄마에게 코로나라는 위험한 요인을 만들 순 없었기에 수술 직후, 엄마를 볼 수 없었다.
내 머리 속을 지배하는 건 엄마인데, 해야 할 일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당시 운영하던 가게는 남편에게 맡겨두었지만, 모든 결정권은 내게 있었다. 오프라인 카페 공간 운영에 이어, 새로 들어온 직원도 있었다. 돌아보면 나도 처음이었고, 직원도 처음 회사에 들어왔다.
하지만, 2월 한 달은 필수로 진행할 교육이 있었다. 산재한 일, 직원의 퇴사, 신규 교육 그리고 카페 재건을 위한 베이킹 교육까지. 이런 상황에서 엄마를 위해 틈을 내 볼 여유조차 없었다.
돌아보면 아픈 엄마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게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적한 많은 일들을 처리하는 게 급급했다. 모든 신경의 팔 할은 엄마에게 가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늘 외면했다.
혼자 차를 운전할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일을 하고 싶었지만 욕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억울하고 화가 올라와서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엄청나게 추운 겨울이었지만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았다. 그렇게 해야 눈물이 쏙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운전을 하며 늘 생각했다. 내 삶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밭게 사는 걸까?
결혼하고 남편과 얼굴을 찡그리며 싸웠던 큰 이유는 바로 ‘넌 네 일이 제일 중요하지?’라는 질문과 화. 빨리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면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마음 같은 게 있었다. 엄마의 수술 이후, 시간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늘, 나는 쉬웠다. 제일 후회했던 건 마음대로 엄마의 마음을 속단했던 일이다. 수술 전에 분명 다 괜찮다고 말했다. 알고 있었다. 사실 아는 척하면 내가 더 힘들어질까 봐 외면하고 모른 척했다.
강인해 보이던 엄마는 표적치료를 하며 나에게 숨겨놓았던 속살을 보여주었다. 늘 괜찮다고 말하던 그녀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왔을 때 얼어버렸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멈추었다가 “괜찮을 거야.” 하고 강한 척하는 수 밖엔.
모르고 지나칠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들었던 생각. 엄마는 참 힘들었겠구나.
나는 눈여겨봐야 느껴지는 많은 감각들을 사는 내내 그렇게 살아왔을 테니 말이다.
언제든, 이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모든 시간을 '일'하는 시간으로만 빼 두다가 이제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엄마와의 틈을 만들어본다. 그냥 엄마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확인하는 게 중요해졌다. 그게 바로 엄마의 안부를 묻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