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에게 브런치북을 시작하며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사진, 기록에 집착하는 편이다. 이야기 도중에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분명 메모창을 켜곤 그때의 기억, 분위기, 감정 등을 기록한다. 밀도 있게 집중하고 싶어서 경청하다 보면 그 기억이 휘발되어 한참을 곱씹어보다가 속상한 감정을 일기에 마구 쏟아내기도 한다.
한창 바빠지면서 일기 쓰는 걸 소홀히 할 때쯤, 마음의 결이 단 하나로만 나있었다. 분노와 화. 내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열구덩이 같은 마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 자신이 불구덩이였기에 내 분노는 쉽게 가까운 가족들에게 붙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아프단다. 마음의 병이 가슴으로 퍼졌다. 한쪽 가슴에 암이 발병하면서 엄마는 환자가 되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매일 말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지만 가족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
가게를 오픈하면서 오로지 나만 생각했다. 일단 가게가 잘 돼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겼다. 늘 가게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을 보러 갈 여유가 없었다. 모든 가족들의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흘렀다. 분명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한 해, 두 해가 지나갔다.
그때 그 누구의 안부도 물을 수 없었고, 나의 안부도 물을 수 없었다. 그저 불구덩이를 더 키우지 않는 데에만 몰두할 뿐. 결국 나의 일을 줄이지 못한 나는 완전히 재로 남아 스스로에게 실망 가득한 마음을 가득 안은채 한 해가 지났다.
그렇게 재가 된 내 곁엔 아픈 엄마가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다 괜찮다고. 너의 일을 하라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 시기. 나는 엄마 곁에 있을 수 없었고, 수술할 때도 곁을 지킬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나, 여전히 깊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부채의식은 어찌할 수 없겠지.
힘든 상황일 때면 노트를 피고 앉는다.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물론 항상 명확한 답이 나오진 않는다. 질문을 하다 보면 결국 왜 그 문제가 일어났는지 원인을 파악할 수는 있게 된다. 그래서 내가 던진 몇 가지의 질문들.
- 엄마가 힘들다는 말을 돌려 말할 때 나는 무엇을 했나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힘들다는 감정이 들 때, 외면하면 내가 왜 힘든지 잘 모르는 걸. 엄마가 애둘러 말할 때, 한번 더 질문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 때 놓치지 않고 다시 질문해 볼 것.
-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준 적이 있었나
엄마와 병원을 가는 길. 잠시동안 엄마의 표정과 눈빛을 보며 그제야 그녀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 외에는 항상 엄마는 나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준다. 아직까지 엄마만큼 귀 기울이기 어려운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며 헤아려보기로 한다.
- 엄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제일 찾고 싶다. 엄마는 과연 알고 있을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은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그녀의 길이 궁금하다.
원래 행복이란 목표를 지향하고 그를 지독하게 성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낫는 과정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성취보다 밀도라는 것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와 내가 공부하는 것들을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수 십 년 살아온 사람의 관점을 바꾸는 데는 지독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나는 그녀에게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성처럼 살아온 삶을 깨는 데는 억 겹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엄마의 마음에 조금씩 스며드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연재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구독자분들과의 매주 만날 날을 정해놓고 저의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사랑하는 엄마에게> 시리즈가 찾아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